유럽은행감독청(EBA)이 유럽연합(EU) 내 은행들이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등 ‘비담보’ 암호화폐에 대해 훨씬 더 높은 자본을 보유하도록 요구하는 최종 규제안을 발표했다. 새 규제는 2024년 7월부터 시행된 자본요건규제(CRR III)의 연장선으로, 은행의 암호화폐 노출 리스크를 엄격히 관리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에 발표된 기술적 규제 초안에 따르면, 비트코인과 같은 비담보 암호화폐는 그룹 2b 자산으로 분류되며, 이 자산군 전체에 무려 1,250%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된다. 즉, 은행이 보유한 해당 암호화폐 금액의 12.5배 수준의 자기자본을 별도로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같은 그룹 내에서도 국제결제은행(BIS)의 헤징 및 상계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 그룹 2a로 분류돼 동일한 위험가중치를 적용받지만, 리스크 관리 조건에서 약간의 차이를 둔다.
한편, 기초 금융자산과 연동된 자산 기준 토큰은 그룹 1b로 분류되며, 이들에 대해서는 250%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된다. 이런 차별적 분류는 암호화폐의 성격에 따라 자본 요건을 조정함으로써 전통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마련됐다.
새 규제안에는 은행이 암호화폐에 대해 신용 리스크, 시장 리스크, 거래상대방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계산·통합하는 상세 모델링 기준이 포함됐다. 특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간의 리스크 상계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두 자산이 동일한 구조를 지닌 투자 상품이 아니며 시장 변동성에 상이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규제안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 넘어가 승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위원회는 이를 수정 없이 수용하거나 일부 변경해 승인하거나, 다시 손질을 요구할 수 있는 최대 3개월의 시간을 갖는다. 이어 유럽의회와 EU 이사회가 최대 6개월 안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 최종안은 유럽연합 관보에 게재된 지 20일 후 정식 효력을 갖게 된다.
EBA의 이번 결정은 암호화폐 자산에 대한 조직적 리스크 관리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려는 유럽의 의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은행의 암호화폐 투자를 보다 보수적이고 투명한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도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