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제품에 대해 약 100% 수준의 고율 관세를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대만의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는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내 투자 확대와 관세 면제 가능성 등이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애플의 미국 내 시설 투자 발표 행사에서, 외국산 반도체에 대해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미국 내 공장이 없는 기업을 대상이며, 자국에 생산시설을 보유한 경우에는 관세 부과에서 제외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제조 기반을 미국 본토에 두는 기업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이 발언 직후 대만 증시에서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업체인 TSMC의 주가가 4.89% 오르며 강세를 나타냈다. 대만 국가발전위원회 류징칭 주임위원은 이날 국회 보고를 통해 “TSMC는 미국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 면제 대상”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TSMC는 기존에 650억 달러를 미국 내에 투자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추가로 1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히며 총 6곳의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과 2곳의 패키징 시설 구축을 예고한 바 있다.
TSMC 주가가 상승하면서 전체 대만 증시를 대표하는 자취안지수 역시 2.40% 상승했다. 이는 TSMC가 해당 지수에서 약 4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한국 증시에서도 삼성전자가 애플의 파운드리 수주 소식과 맞물려 2.2% 올랐고, SK하이닉스도 1.26% 상승했다. 반면 일본 도쿄 증시에서는 도쿄일렉트론 디바이스, 르네사스, 어드반테스트 등 반도체 관련 종목들이 모두 3% 안팎 하락하면서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이날 발표된 고율 관세 방침이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있었지만, 미국 내 공장 보유에 따른 관세 회피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오히려 투자 확대 기대감에 반응했다. 특히 미국 내 전체 반도체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현지 생산시설 확보는 단순한 법인세 혜택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이번 발표는 미국의 반도체 자립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외국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자 동시에 인센티브 제공이라는 양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미국에 제조 시설을 갖춘 아시아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수요 확대와 함께 주요 공급망 재편의 중심축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