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벤처투자 시장이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이 2025년 3분기 벤처딜 가치에서 사상 최대 비중을 기록하며 시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세는 소수 대형 투자와 상장에 집중되면서 한정적이라는 분석이다.

피치북(PitchBook)과 미국벤처캐피털협회(NVCA)가 공동으로 발간한 ‘2025년 3분기 벤처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분기 전체 벤처딜 가치 중 64%가 AI 스타트업에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분기 최고 기록으로, 그동안 AI 연관 기술로 분류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와 빅데이터 부문만이 연간 250억 달러(약 36조 원)를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AI 열풍에 힘입어 미국 내 전체 벤처딜 수는 전년 대비 약 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이 지난 10년 중 세 번째로 활발했던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하지만 자금 조달 측면에선 여전히 위축이 뚜렷하다. 올 들어 미국에서 신규 결성된 벤처펀드는 378개에 그쳤으며, 그에 따른 신규 약속금도 478억 달러(약 68조 8,000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유동성 부족과 불확실한 투자환경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AI 열기를 따라 늘어난 자본투입 요청이 펀드의 실탄(dry powder)을 소진시키고 있으며, 이는 조만간 시장에 다시 유입될 자금재활용을 부추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상장 시장이 열려야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그 역시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덧붙었다.

상장 및 기업 인수합병(M&A)을 포함한 미국 벤처익스잇 활동 역시 AI가 중심을 이뤘다. 올해 들어 AI 기업들은 총 317건의 익스잇(exit)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전체 익스잇 가치 중 40%가 AI 부문에서 발생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3월 상장한 코어위브(CoreWeave)가 꼽힌다. 특히 역상장(리버스 머지)을 포함한 공개시장 거래가 M&A를 앞서는 익스잇 가치를 보여줘, 시장 복원의 신호로써 의미를 더했다.

유럽과 기타 지역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지만, 초대형 라운드가 적은 탓에 M&A 중심의 익스잇이 더 우세했다. 동시에 유럽 자금조달 시장은 10년 만에 최저 속도를 기록하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보고서는 상장 시장의 재개와 대규모 국경 간 공모가 유럽 스타트업의 성장자본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 및 남미는 지역별 편차가 심한 가운데, 공급망 및 제조업 소재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무역관세 불확실성, 제한된 유동성, 일부 초대형 거래가 지역 시장을 좌우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는 창업자와 제한책임출자자(LP)에게 앞으로의 시장이 ‘매우 선별적인 자본시장’으로 변모할 것임을 경고했다. 진정한 기술 차별성을 갖춘 AI 핵심기술, 수평형 AI 플랫폼, 산업별 필수 솔루션을 보유한 기업만이 완화된 조건에서 자금을 유치하고 성공적인 익스잇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외 기업들은 길어진 조달 사이클과 더 험난한 투자 조건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