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7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가상자산의 연방 증권법 적용에 관한 공동 해석 지침(Interpretive Guidance)을 발표했다. 68쪽 분량의 본 지침은 가상자산을 디지털 상품(Digital Commodities), 디지털 수집품(Digital Collectibles), 디지털 도구(Digital Tools),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증권(Digital Securities)의 5가지로 구분하는 '토큰 분류체계(Token Taxonomy)'를 수립하고, 이 중 디지털 증권만을 연방 증권법의 규율 대상으로 한정하였다. 아울러 마이닝, 프로토콜 스테이킹, 에어드롭 등 그간 규제적 회색지대에 놓여 있던 네트워크 참여 활동이 증권 거래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해석의 범위를 넘어, 지난 10여 년간 Howey Test에 의존해 온 사후적 집행(Enforcement-first) 중심의 규제 패러다임이 전면적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한다.
미국 규제 패러다임의 구조적 전환
본 지침의 의의는 직전 규제 체제와의 명확한 단절에 있다. SEC는 2020년 말 리플(Ripple)을 시작으로 코인베이스(Coinbase), 바이낸스(Binance) 등 주요 기업을 상대로 대규모 집행 소송을 연쇄 제기하며,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상자산을 사전적 기준 없이 증권으로 간주해 왔다. 이러한 사후적 규제는 시장 참여자들의 법적 불안정성을 가중시켰고, 결과적으로 미국 내 가상자산 산업 자본의 해외 이탈을 야기했다.
Atkins SEC 위원장은 과거의 규제 방식을 '명확성 제공의 지속적 실패'로 규정하며 신규 분류체계의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비증권 가상자산 중 '디지털 상품'은 시스템의 프로그래밍적 작동 및 수급에서 가치가 창출되는 자산을, '디지털 수집품'은 예술·게임 아이템 등을, '디지털 도구'는 멤버십 및 자격증명 등을 포괄하도록 정의되었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GENIUS Act에 따른 허가된 발행인의 지급형 스테이블코인은 비증권으로 취급하되, 그 외의 경우는 사실관계에 따라 증권성 인정 여지를 남겨두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증권성의 가변성'에 대한 해석이다. 비증권 가상자산이라도 발행인이 공동사업에 대한 투자를 유인하고 본질적 경영 노력에 기반한 수익 기대를 제공한다면 투자계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역으로, 탈중앙화 진전 등에 따라 투자계약 관계가 종료될 수 있음을 명시함으로써, 자산의 증권성이 고정적 속성이 아닌 발행 및 유통 맥락에 따른 가변적 상태임을 법리적으로 확인했다.
한국과의 비교
금번 SEC의 발표는 한국의 현행 가상자산 법체계와 상당 부분 궤를 같이한다.
한국은 자본시장법 제4조의 증권 정의에 따라, 실질적인 증권성이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자본시장법을 적용하는 '원칙적 비증권, 예외적 증권'의 구조를 취해왔다. 2023년 2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 역시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자산이 증권에 해당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한 바 있다.
과거 대부분의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추정했던 미국의 규제 당국이 이번 발표를 통해 '비증권 원칙, 증권 예외'로 규제 전제를 전환함에 따라, 양국의 규제 출발점이 구조적으로 수렴하게 된 것이다.
비증권형 가상자산의 세부 분류의 필요성
다만, 미국의 신규 분류체계는 비증권형 가상자산에 대한 세부 분류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현행 제도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SEC의 4가지 비증권 분류나 유럽연합 가상자산법(MiCA)의 지급형·유틸리티 토큰 구분과 달리, 한국은 현재 비증권형 가상자산에 대한 하위 분류 체계가 부재하다.
현행법상 비증권형 가상자산은 특정금융정보법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포괄적 규율을 받을 뿐, 자산의 성격(지급형, 유틸리티형, 상품형 등)에 따른 차등적 법적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의 전자금융거래법상 선불전자지급수단 해당 여부,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적법성, 유틸리티 토큰 사전 판매의 증권 공모 해당 여부 등 실무적 차원에서 다수의 해석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실무적 함의와 입법적 방향성
증권형 토큰의 경우, 기존 자본시장법의 해석 연장선상에 있으며 2026년 1월 관련 법안(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제도적 기반이 확충되고 있어 단기적인 규제 공백은 크지 않다. 핵심 과제는 비증권형 가상자산 영역이다. 토큰의 성격에 따라 발행인의 의무, 유통 규제, 이용자 보호 조치가 차등 적용되어야 하므로, 이는 행정 가이드라인을 넘어선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의 고유한 입법 영역이다.
비록 SEC의 이번 발표가 국내에 직접적인 법적 기속력을 갖지는 않으나, 명확한 실무적 시사점이 있다. 첫째, 국내 프로젝트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경우 SEC의 5가지 분류체계에 입각한 증권성 사전 검토가 필수적이다. 둘째, 특정 시점에서 투자계약 관계가 종료될 수 있다는 SEC의 해석은 향후 국내 법리 해석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쟁점이다. 셋째, 향후 발표가 예고된 스타트업 특례(Startup Exemption) 및 자금조달 특례(Fundraising Exemption) 등 혁신적인 특례 조치의 구체적 요건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 전략 수립에 직접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 규제 당국이 장기간 지속된 가상자산 분류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제시한 것은 규제 합리성 제고 측면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다. 한국의 과제는 증권형 영역의 제도화를 넘어, 비증권형 가상자산의 세부 분류와 규율 체계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입법례는 이를 위한 유의미한 비교법적 참조점으로 보인다. 시장이 기다리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실무에서 적용 가능한 구체적 기준이다.
(권오훈 변호사는 차앤권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가상자산 규제 자문, 거래소 관련 분쟁, 국제중재를 주로 다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블록체인 기본법 제정 연구용역 총괄 PM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