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업비트에서 꽤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일본 엔화와 1대1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 JPYC가 상장 직후 37.6원까지 치솟은 것이다. 당시 실제 엔화 가치는 1엔당 9원 안팎이었으니, 시장에서는 사실상 1엔짜리 자산을 네 배 가까운 가격에 사고파는 기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몇 시간 뒤 카이아와 폴리곤 네트워크를 통한 JPYC 입금이 가능해지자 가격은 빠르게 9원대로 되돌아왔다. JPYC 자체의 가치가 하루 만에 네 배 올랐다가 폭락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싼 JPYC가 업비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동안 일시적인 공급 부족이 발생했고, 그 통로가 열리자 차익거래자들이 움직이면서 가격 차이가 사라진 것이다.
작은 암호화폐 거래소 안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 장면에는 지금 세계 금융시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원리가 들어 있다.
돈은 가격 차이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다시 가격을 바꾼다.
그리고 지금 세계 금융시장에서 이 원리가 가장 큰 규모로 작동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본 엔화다.

1엔짜리 JPYC가 37원이 된 이유
JPYC 사태는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서울에서 1000원에 파는 똑같은 생수가 부산에서는 4000원에 거래된다고 가정해보자. 서울에서 물을 사서 부산으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 거래에 몰려들 것이고, 그렇게 부산으로 공급이 늘어나면 4000원이던 가격은 결국 서울 가격에 가까워진다.
이것이 차익거래다.
JPYC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해외나 다른 시장에서는 1엔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JPYC가 업비트에서는 30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됐지만, 상장 초기에는 이를 업비트로 가져올 수 있는 통로가 제한돼 있었다. 따라서 가격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를 실제 거래로 연결하기 어려웠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제한된 물량을 놓고 매수세가 몰리면서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입금 통로가 넓어지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외부에 있던 싼 JPYC가 업비트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비싼 가격에 이를 팔려는 거래가 늘어나면서 가격은 본래 가치에 가까운 수준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JPYC 가격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은 거래소의 명령도, 정부의 개입도 아니었다. 가격 차이를 발견한 시장 참가자들이 돈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와 비슷한 일이 훨씬 큰 규모로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싼 돈 거래’
일본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다. 일본에서 낮은 금리로 엔화를 조달한 뒤 이를 달러로 바꾸고, 금리가 더 높은 미국 국채나 회사채, 주식 같은 자산에 투자하면 두 나라의 금리 차이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엔 캐리트레이드(Yen Carry Trade)다.
실제 금융시장에서는 환율 헤지와 파생상품, 레버리지 등이 얽혀 있어 훨씬 복잡하지만 기본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싼 돈을 빌려 더 높은 수익을 주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JPYC 시장에서 누군가가 9원짜리를 사서 30원에 팔려고 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JPYC에서는 몇십원 차이를 놓고 거래가 벌어졌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수천억달러 규모의 돈이 움직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금리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금리가 낮게 유지되는 동안 엔화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일종의 ‘조달 통화’ 역할을 해왔고, 그 돈이 미국 주식과 채권, 신흥시장, 각종 위험자산으로 흘러 들어갔다.
암호화폐 시장도 이 거대한 유동성 흐름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이 금리를 올렸는데 엔화는 왜 떨어졌나
최근 시장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이후 엔화의 움직임이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그 나라 통화의 매력도는 높아진다. 예금과 채권에서 받을 수 있는 이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해당 통화를 보유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통화 가치가 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장면이 나타났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렸는데도 엔화는 오히려 달러 대비 약세를 보였다.
시장이 단순히 ‘이번에 몇 퍼센트포인트를 올렸느냐’만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은 늘 현재보다 미래를 먼저 거래한다. 일본이 이번에 금리를 올렸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빠르게, 얼마나 많이 금리를 올릴 수 있을지가 훨씬 중요했다.
여기에 미국도 금리를 올리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는데 미국 역시 한 걸음 앞으로 움직인 셈이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여전히 상당하다면, 엔화를 싸게 빌려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트레이드의 기본 논리 역시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이 금리를 올렸는데도 엔화가 강해지지 못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비트코인 투자자가 왜 엔화를 봐야 하나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일본은행이나 엔화 이야기는 다소 멀게 들릴 수 있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움직이는 것은 미국 연준이나 ETF 자금, 규제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 캐리트레이드의 구조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엔화를 빌려 미국과 글로벌 금융시장에 투자했던 자금은 평상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일본의 금리가 낮고 엔화도 약하다면 투자자들은 이 거래를 유지할 이유가 충분하다.
문제는 엔화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순간이다.
일본은행이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를 올리거나,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서 미·일 금리차가 빠르게 좁혀지거나,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갑자기 강해질 경우 캐리트레이드 투자자들의 계산이 달라진다. 그동안 빌렸던 엔화를 갚기 위해 해외 자산을 팔고 다시 엔화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한두 명에게서 끝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가 비슷한 거래를 하고 있다가 동시에 출구로 향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급격히 변한다.
주식을 팔고, 채권을 팔고, 레버리지를 줄이며, 가장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부터 처분하기 시작한다. 위험자산에 매도 압력이 커지고, 그 돈으로 엔화를 다시 사들이면 엔화는 더 강해진다. 엔화가 더 강해지면 아직 포지션을 정리하지 않은 투자자들까지 손실을 피하기 위해 청산에 나선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쇄반응이다.
2024년 여름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을 때도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이 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그때 확인된 것은 한 가지였다.
엔화는 더 이상 일본 안에서만 움직이는 통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엔화 가격보다 ‘속도’다
그래서 엔화를 볼 때 단순히 달러당 150엔인지, 155엔인지, 160엔인지만 봐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다.
엔화가 몇 달에 걸쳐 서서히 강해지는 상황이라면 투자자들은 시간을 두고 포지션을 줄일 수 있다. 환율 헤지를 늘리거나 자산 배분을 바꾸면서 충격을 흡수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며칠 사이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레버리지를 사용한 투자자에게는 마진콜이 발생하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강제로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결과 엔화가 얼마나 빠르게 강해지는가를 더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은 24시간 거래되고 유동성이 높다. 시장에 급하게 현금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팔기 쉬운 자산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기도 하다.
캐리트레이드가 갑자기 뒤집힐 경우 비트코인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더라도 매도 압력에 휘말릴 수 있는 이유다.

JPYC가 보여준 ‘작은 화폐전쟁’
여기서 다시 업비트의 JPYC로 돌아가 보자.
1엔의 가치를 갖도록 만들어진 JPYC가 37원까지 올라갔던 이유는 일본 경제가 하루 만에 네 배 좋아져서도, 엔화 가치가 갑자기 폭등해서도 아니었다.
돈이 이동하는 통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싼 가격의 JPYC가 있는 시장과 비싼 JPYC가 거래되는 시장 사이가 연결되지 않자 가격 차이는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그러나 연결 통로가 생기자 시장 참가자들은 곧바로 차익거래에 나섰고, 가격은 본래 가치에 가까운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반대로 미국과 일본이 너무 깊이 연결돼 있다.
일본에서 싸게 조달된 돈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커질수록 이러한 거래의 매력은 높아진다. 반대로 금리 차이가 줄어들거나 엔화가 갑자기 강해지면 돈의 흐름은 반대로 돌아선다.
JPYC에서는 그 과정이 몇 시간 만에 끝났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수천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움직인다.
그래서 업비트의 JPYC 사태는 작지만 흥미로운 금융 실험이었다.
가격 차이는 돈을 움직이고, 돈의 이동은 다시 가격을 바꾼다.
이 단순한 원리가 JPYC에서는 몇십원짜리 가격 차이로 나타났고, 세계 시장에서는 엔 캐리트레이드라는 거대한 자금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화폐전쟁’이다
물론 지금 미국과 일본이 전통적인 의미의 화폐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과거 화폐전쟁이라는 표현은 보통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자국 통화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상황을 뜻했다. 지금 일본은 오히려 지나친 엔화 약세를 걱정하고 있고, 미국 역시 달러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새로운 형태의 통화정책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높은 금리를 유지하면 달러가 강해지고 엔화는 약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엔화가 지나치게 약해지면 일본의 수입물가가 오르고 일본은행은 금리를 더 올릴 압력을 받는다.
그런데 일본이 너무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 엔화가 갑자기 강해지면 이번에는 엔 캐리트레이드가 흔들린다. 일본에서 시작된 충격이 미국 주식과 채권, 신흥시장, 암호화폐까지 번질 수 있다.
미국은 물가를 잡아야 하고, 일본은 엔화와 물가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두 나라가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움직이지만 그 결과는 서로의 시장에 영향을 주고, 결국 전 세계 자산 가격까지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과거의 ‘환율전쟁’이라기보다 금리와 환율, 그리고 글로벌 유동성을 둘러싼 새로운 화폐전쟁에 가깝다.
비트코인의 다음 변수는 워싱턴이 아니라 도쿄일 수도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오랫동안 워싱턴을 바라봤다. 연준이 금리를 언제 내릴지, 미국 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SEC가 어떤 규제를 내놓을지가 비트코인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였다.
앞으로는 도쿄도 같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행이 얼마나 빠르게 금리를 정상화하는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얼마나 좁혀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엔화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를 봐야 한다.
당장 일본이 금리를 올렸다고 해서 엔 캐리트레이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 금리가 여전히 높고 엔화가 약세를 유지한다면 캐리트레이드의 구조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위험은 대개 모두가 같은 거래를 하고 있을 때 시작된다.
평상시에는 엔화를 싸게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 매우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환율이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수많은 투자자가 동시에 같은 출구를 찾는다.
그 순간에는 경제 전망도, 기업 실적도, 비트코인의 장기 가치도 잠시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파는 시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업비트 JPYC는 작은 시장에서 그 원리를 몇 시간 만에 보여줬다. 37원이던 가격은 돈의 이동 통로가 열리자 순식간에 9원대로 돌아왔다.
금융시장에서 가격 차이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돈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시장에서 그 돈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가 엔화다.
그리고 비트코인의 다음 큰 변동이 워싱턴이 아니라 도쿄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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