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가권지수가 올해 들어 54% 상승해 코스피 상승률 52%를 처음 넘어섰다. 7월 글로벌 기술주 조정 이후 아시아의 두 주요 AI 증시가 서로 다른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8월 들어 대만 주식을 17억 달러(약 2조4000억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한국 주식에서는 62억 달러(약 8조7600억원)를 순매도했다.
대만 증시는 앞서 6주 연속 외국인 순매도를 겪었지만 최근 2거래일 연속 순매수로 전환했다. 외국인 자금이 대만으로 돌아선 가운데 한국에서는 이탈하면서 두 시장의 수급 흐름이 엇갈렸다.
올해 아시아 주요 시장 가운데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던 한국 증시는 최근 대만에 선두를 내줬다. 대만 증시의 상대적으로 낮은 변동성과 폭넓은 기술 하드웨어 공급망이 투자자 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워런 치앙(Warren Chiang) GMO 펀드매니저는 “대만 기업의 품질은 매우 높다. 대만 증시는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따라 움직이지만 펀더멘털 관점에서 과도하게 위험한 시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기초 체력과 산업 구성의 차이가 시장 안정성을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치앙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 민감도가 높은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된 반면 대만 기업은 기술 하드웨어 공급망 전반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AI 관련 대형주를 보유했다는 공통점에도 산업 구조에 따라 이익 변동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한국 증시 전반에서도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졌다. 이번 자금 흐름은 개별 기업뿐 아니라 한국과 대만의 기술주 구성에 대한 평가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기업 이익 전망도 대만 쪽으로 기울었다.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대만 증시의 향후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EPS)은 9.5% 상향 조정돼 한국 증시의 7.4%를 웃돌았다.
대만 증시의 이익 전망 상향 폭이 한국을 앞선 것은 최근 1년 사이 처음이다. EPS는 기업의 순이익을 발행 주식 수로 나눈 지표로, 시장 전체의 예상 EPS 변화는 상장사 이익 전망이 어느 방향으로 조정되는지를 보여준다.
프랭크 벤짐라(Frank Benzimra) 소시에테제네랄(Société Générale) 주식 전략가는 대만 증시가 TSMC 같은 파운드리 기업을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기업은 일반 메모리 업체보다 이익의 경기 순환 변동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파운드리는 외부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사업이다. 대만은 파운드리와 부품 등 하드웨어 공급망 전반에 기업이 분포한 반면 한국 증시는 메모리 반도체 대형주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증시에서는 레버리지 거래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헤베 천(Hebe Chen) 밴티지 글로벌 프라임(Vantage Global Prime) 수석 시장분석가는 “한국 증시에는 레버리지와 투기적 포지션이 많이 포함돼 있다”며 “시장 기대가 조금만 흔들려도 기본 여건이 크게 나빠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가격 하락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증시의 가격 매력이 사라졌다는 평가는 아니다. 7월 조정 이후 코스피의 밸류에이션 할인 폭은 대만 증시와 비교해 역사적 수준으로 확대됐다.
아이작 통(Isaac Thong) 애버딘(Aberdeen) 아시아 인컴 펀드매니저는 “현재 밸류에이션을 고려하면 한국 증시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정에서 대만 증시의 하락 폭이 한국보다 작았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두 시장의 장기 흐름은 대규모 AI 연구개발과 자본지출이 실제 이익으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벤짐라는 AI 수익화가 장기 핵심 쟁점이라며 투자 비용을 실질적인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글로벌 투자자에게 가장 긴 위험 요인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