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클라우드 기업들을 대표하는 무역단체 CISPE가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기업 브로드컴(Broadcom)의 VM웨어(VMware) 인수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브뤼셀 소재 EU 일반법원에 제소하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브로드컴의 인수를 승인한 결정을 무효화해달라고 요구했다.
브로드컴은 지난 2022년 5월, VM웨어를 약 610억 달러(약 87조 8,4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으며, 규제 당국의 심사를 거친 뒤 약 18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유럽연합과 영국 경쟁당국은 해당 인수가 시장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철저한 검토에 나섰다.
유럽연합은 경쟁 제한 가능성을 지적하며 브로드컴에 다양한 조건을 부여한 뒤 합병을 허가했다. 하지만 CISPE는 이번 제소를 통해 브로드컴이 약속한 조치들이 시장 독점 방지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CISPE는 브로드컴이 인수 완료 이후 일부 고객의 VM웨어 계약을 해지하거나 지나치게 불리한 신규 라이선스 조건을 부과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각에선 소프트웨어 가격이 10배 이상 인상됐다는 사례까지 제기됐다. 무엇보다 중소 클라우드 업체들이 VM웨어 기반 서비스를 구매하고 재판매할 수 없도록 제한시키는 새 조건도 신설됐다는 것이 CISPE의 주장이다.
프란시스코 민고랑스 CISPE 사무총장은 “가상화 시장에서 VM웨어 소프트웨어의 지배력이 워낙 뚜렷한 만큼, 브로드컴이 강제한 불공정한 조건은 유럽 내 대부분의 클라우드 이용 기업에 즉각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분쟁의 중심에 있는 VM웨어는 대표적인 가상 머신 플랫폼인 vSphere를 포함해 기업용 인프라 관리를 위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왔다. 브로드컴은 기존에 서버와 저장장치를 연결하는 FC HBA 칩셋 시장에서도 강자로, VM웨어 소프트웨어와 자사 하드웨어 간 호환성에 대한 우려는 이미 유럽반독점당국의 조사를 촉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브로드컴은 당시 승인을 조건으로 경쟁사 제품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고, 자사 FC HBA 칩 드라이버 일부를 오픈소스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CISPE는 이 같은 조치로는 시장 독점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며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제소는 CISPE가 기술 대기업을 상대로 한 경쟁 조치에 나선 두 번째 사례다. 이 단체는 과거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FT)의 라이선스 정책이 클라우드 업계에 불리하다며 경쟁당국에 민원을 제기했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의를 통해 조건을 개선한 전례가 있다.
브로드컴은 이번 소송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유럽 내 소프트웨어 시장 구조와 라이선스 체계 전반의 재검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