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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진실'을 재구성한다…개인화된 현실이 공동체를 파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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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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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의 판단과 신념 형성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진실이 개인화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인식과 공동체 기반까지 잠식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 기반 정보 전달이 공공성과 비판적 사고를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AI가 '진실'을 재구성한다…개인화된 현실이 공동체를 파괴할까 / TokenPost.ai

AI가 '진실'을 재구성한다…개인화된 현실이 공동체를 파괴할까 / TokenPost.ai

AI는 인류의 인지적 부담을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으로 덜어내고 있다. 과거에는 기억을 문자로, 계산을 계산기로, 길 찾기를 GPS에 맡겼다면, 이제는 ‘판단’과 ‘의미 형성’마저 인공지능에게 위임하고 있다. AI 시스템은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고 습관을 학습하며, 갈수록 정교하게 개인화된 진실을 제공함으로써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무엇을 사실로 믿는가'까지 재구성하고 있다.

이 개인화는 단순한 편의를 넘어, 매우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는 변화로 이어진다. 각 사용자는 자신만의 진실이 담긴 현실 속으로 점차 고립되고, 이는 공유된 사실 기반이나 공동체 의식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AI는 단순히 정보를 맞춤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신념 형성과 이해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판단 능력 자체를 재편성하고 있다.

진실의 개인화는 정치, 도덕, 사회적 인식까지 분열시킬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 문제를 넘어 윤리적, 철학적 위기로 확장된다. 누구도 이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각자의 ‘현실’이 스스로의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만든다면, 집단적 대화와 합의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오래전부터 형성돼 왔지만, AI가 이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전통적 윤리와 집단의 정체성보다는 개인의 자율성과 취향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AI는 그 개인화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이면서, 정보의 수집-분석-제공 방식 모두를 인간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전환시켰다. 이 흐름 속에서 AI는 그저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가 아닌, 진실을 유도하고 필터링하는 해석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AI 시스템은 사용자와의 감정적 연결까지 시도한다. 챗봇의 어조, 응답 속도, 제안의 정서적 색깔까지 사용자에게 맞춤 설계된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AI와의 상호작용에서 친근함, 심지어 애정을 경험하고 있으며, 일부는 AI와 결혼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단순히 기계적 대화 이상의 관계 형성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개념 중 하나가 ‘사회정서적 조율’이다. 이는 인간과 AI 간의 상호작용이 단지 정보 전달을 넘어 감정, 인식, 태도를 함께 형성해나가는 구조임을 의미한다. AI는 사용자를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면서 상호간 세계 인식을 바꿔간다. 이는 사용자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맞춤형 소통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보 선택권과 자유 의지를 서서히 약화시킬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개인화를 뒷받침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스탠퍼드대학교 기초모델연구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AI 모델들은 사용자 정체성이나 과거 이력에 기반해 응답 내용을 달리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이미 갖추었으나, 이런 작동 방식은 일반 사용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처럼 불투명한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자신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현실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물론 개인화 기술이 긍정적인 결과도 낼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맞춤형 튜터링 시스템은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고, 정신건강 앱은 사용자 상황에 따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단순한 서비스 영역을 넘어, 정보와 진실이라는 극히 중요한 영역에까지 적용될 때다. 정보 소비가 철저히 개인화된다면, 집단적 토론과 공감대 형성은 필연적으로 어려워진다.

전통적으로 진실은 언론, 학계, 종교 등 공공 기관을 통해 필터링됐다. 이들은 완벽히 중립적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집단적으로 검증되고 사회적으로 공유 가능한 기준을 따랐다. 그러나 AI는 그런 매개를 생략한 채, 각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개별 진실’을 전달한다. 이로 인해 진실의 의미는 고정된 실체에서 점점 관념화되고 있으며, 알고리즘의 설계자조차 그 결과물을 완전히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으로는 ‘AI 공공 신탁’이 있다. 이는 법학자 잭 벌킨이 소개한 개념으로, 진실을 관리하는 AI 시스템들이 사용자에게 책임을 지는 구조를 뜻한다. 모델은 공개된 데이터로 학습하고, 투명한 헌법과 설명 가능한 구조를 채택해야 하며, 다양성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체계로 운영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해결법을 넘어, AI가 사회적 책임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다.

결국 AI 개인화가 위협하는 건 단순한 정보 질서가 아니라 공동의 인식 체계다.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진실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찾는 법이다. 과거에는 인간 간 대화, 논쟁, 탐색을 통해 진실의 경로를 구성했지만, 이제는 이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제공되고 있다. 그런 흐름에서 우리는 알고리즘적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비판적 사고와 사고의 다양성마저 희미해진다.

타인을 설득하고 함께 이해하며, 때로는 의견 충돌을 통해 진실을 좁혀가던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바벨의 이야기처럼, 산산이 흩어진 언어가 소통 불가능성을 상징했다면, 지금은 그보다 더 조용하게, 그러나 더 근본적인 분열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우리’를 해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AI는 정보의 전달자뿐 아니라 진실의 협력자로 다시 정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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