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 트레저리(DAT)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한때 기업 혁신의 상징으로 불리던 ‘비트코인 금고’ 모델이, 지금은 거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비트마인의 톰 리는 “디지털자산 트레저리 버블이 터졌다”고 단언했다. 기업들이 보유한 암호화폐보다 시가총액이 낮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단기적 충격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자산 가치의 하락이 아니다. DAT라는 구조가 ‘보유’를 ‘혁신’으로 착각한 데 있다.
본지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DAT 기업의 시가총액은 실제 보유 자산을 밑돌고, 주식은 끝없는 희석에 시달린다고. 시장이 더 이상 “코인 많이 들고 있는 기업”을 혁신 기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보유량보다 중요한 것은 ‘운용 능력’이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사례는 상징적이다. 2020년 이후 공격적 매수로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세 배를 웃돌았던 회사는, 이제 프리미엄이 1.4배 수준으로 줄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했는데도 말이다. DAT 프리미엄은 녹았고, 남은 것은 신뢰의 균열이다.
리의 발언은 시장의 냉정을 다시 확인시킨다. 단순히 코인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는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보유’는 재무활동이지만, ‘활용’은 산업활동이다. 후자가 빠지면 DAT는 장부 속 숫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DAT가 완전히 실패한 모델은 아니다. 시장은 ‘보유형’에서 ‘운용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첫 세대 DAT가 단순한 금고였다면, 다음 세대는 스마트 계약을 기반으로 자산을 스스로 굴리는 ‘프로그램형 금고’다. 리가 말한 버블 붕괴는 끝이 아니라 진화의 신호다.
이더리움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가 제시한 1만 달러 이더리움 전망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다. 전 세계 트레저리가 블록체인 위로 이동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펀드, 기업 간 결제—all roads lead to Ethereum.
오늘의 DAT 논쟁은 결국 ‘누가 자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하는가’의 문제다. 공시용 지갑에 코인을 넣어두는 시대는 끝났다. 자산이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수익을 창출하고, 계약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체계로 옮겨가고 있다.
버블은 꺼질 때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DAT 역시 마찬가지다. 신기루가 걷히면 남는 것은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 위에서 진짜 금고, ‘DAT 2.0’의 시대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