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쉽게 말해 ‘디지털 달러’다. 이용자가 1달러를 맡기면, 발행사는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는 1달러짜리 디지털 화폐를 내준다. 이용자는 이 돈으로 해외 송금을 하거나, 거래소에서 거래하거나, 앞으로는 결제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이용자가 맡긴 진짜 달러는 어디로 갈까.
발행사는 그 돈을 그냥 금고에 넣어두지 않는다. 미국 국채나 현금성 자산에 넣어둔다. 그러면 이자가 나온다. 이용자의 돈에서 이자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자는 대부분 이용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발행사가 가져갔다.
이것이 지금까지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수익 구조였다. 돈은 고객이 냈고, 이자는 발행사가 가져갔다.
테더가 이 구조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서클도 USDC를 앞세워 같은 길을 걸었다. 스테이블코인은 한동안 금융업계에서 보기 드문 ‘좋은 장사’였다. 고객이 맡긴 돈은 계속 쌓이고, 그 돈으로 국채를 사면 이자가 나온다. 금리가 높을수록 수익은 더 커진다. 은행처럼 돈을 모으지만 은행보다 가볍고, 카드망보다 빠르게 돈을 움직이면서도 수익성은 높았다.
말하자면 남의 돈 위에 세운 이자 기계였다.
그런데 너무 좋은 장사는 오래 혼자 먹기 어렵다. 돈 냄새가 나면 경쟁자가 온다. 처음에는 암호화폐 업계 안에서 도전이 나왔다. “왜 한 회사만 믿어야 하느냐”는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했다. 이어 “왜 이자는 발행사만 가져가야 하느냐”는 수익 공유형 스테이블코인이 나왔다.
이제는 더 큰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다. 비자, 마스터카드, 블랙록, 스트라이프, 구글 같은 제도권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히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다. 돈이 움직이고, 돈이 머무는 곳에서 생기는 수익이다.
오픈USD, 이른바 OUSD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OUSD는 단순한 새 스테이블코인이 아니다. 기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누려온 수익 구조에 질문을 던진다. 발행과 상환을 더 싸게 만들고, 준비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특정 발행사가 독점하지 않는 구조를 내세운다.

질문은 단순하다.
스테이블코인이 공개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고, 그 밑천이 이용자와 기업의 돈이라면 왜 이자는 발행사만 가져가야 하는가.
시장은 이 질문에 즉각 반응했다. OUSD 등장 이후 서클 주가는 급락했다. 겉으로 보면 서클이라는 회사의 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큰 의미가 있다. 시장은 서클 하나를 판 것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이자를 독점하던 시대를 다시 평가한 것이다.
OUSD가 서클을 무너뜨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미 생기고 있던 균열을 드러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그 많은 돈에서 나오는 이자는 누가 가져가야 하느냐”는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이 질문은 발행사만 향하지 않는다. 은행도 피할 수 없다.
은행은 오랫동안 두 가지 큰 수익을 누려왔다. 하나는 예금이다. 고객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은행은 그 돈을 운용해 이익을 낸다. 다른 하나는 결제 수수료다. 카드 결제가 일어날 때마다 발급 은행은 수수료의 큰 몫을 가져간다.
그동안 이 구조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돈은 은행 계좌에 머물고, 결제는 카드망을 지나가며, 그 과정에서 은행이 수익을 가져갔다. 소비자는 카드를 쓰고, 가맹점은 수수료를 내고, 은행과 카드 네트워크는 그 사이에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들어오면 이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디지털 달러가 은행 계좌와 카드 발급망을 거치지 않고 직접 움직이면, 은행이 끼어들 자리가 줄어든다. 모든 결제가 당장 그렇게 바뀐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돈이 지나가는 새 길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기존 길목의 힘은 약해진다.
여기서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움직임을 단순히 “은행에 대한 공격”으로 보면 안 된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은행의 적이 아니다. 오랫동안 은행과 함께 카드 결제망을 키워온 동맹에 가깝다. 다만 돈의 길이 바뀌면 각자의 계산도 달라진다.
은행은 예금과 카드 수수료를 지켜야 한다. 반면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어떤 돈이 움직이든 그 결제 흐름 위에 남아야 한다. 달러가 카드로 움직이면 카드망 위에 있어야 하고, 달러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움직이면 그 위에도 올라타야 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의 형태가 아니라 돈이 지나가는 길이다.
그래서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스테이블코인 흐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이다. 가만히 있으면 새 결제망에서 밀려날 수 있다. 참여하면 적어도 새 판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돈이 지나갈 때 수수료를 받았다면, 앞으로는 돈이 머무를 때 생기는 수익에도 접근하려는 것이다.
은행은 다르다. 은행이 수익 공유형 스테이블코인에 적극적으로 올라타기는 쉽지 않다. 그 모델은 은행의 본업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고객의 돈을 모아 운용하고,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을 금융기관이 가져가는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왜 돈에서 생기는 이자를 은행이나 발행사가 독점하느냐”는 질문에 은행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유다.
규제로도 이 흐름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이용자에게 직접 이자를 주는 것은 법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이나 결제사가 포인트, 할인, 캐시백, 리워드 형태로 혜택을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신용카드 산업이 이미 수십 년 동안 해온 방식이다.
소비자는 카드를 쓸 때 이자를 받으려고 쓰지 않는다. 포인트와 할인, 캐시백 때문에 쓴다. 스테이블코인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발행사가 직접 이자를 주지 않아도, 플랫폼은 사용 혜택을 줄 수 있다. 이름은 이자가 아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돈을 쓰는 이유가 된다.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은행들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가 소비자 접점을 가져갈 때 은행은 뒤에서 계좌와 정산망을 제공하는 역할로 밀렸다. 고객은 은행 앱이 아니라 플랫폼 앱을 열었다. 은행은 돈을 보관했지만, 고객의 습관과 데이터는 플랫폼으로 넘어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을 낯선 암호화폐의 문제로만 보려 한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낯선 코인보다 익숙한 기업에서 올 가능성이 크다. 결제 기업, 플랫폼 기업,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제도권의 얼굴로 들어올 수 있다.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익숙해 보이지만, 그들이 깔고 있는 길은 은행의 예금과 결제 수익을 우회할 수 있다.
그래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누가 발행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누가 고객을 잡는가. 누가 준비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가져가는가. 누가 결제 데이터를 쥐는가. 누가 리워드와 혜택을 설계하는가.
은행 중심으로만 설계하면 안정성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고객 접점과 결제 혜택을 플랫폼이 가져가면 은행은 또다시 뒤쪽 인프라로 밀릴 수 있다. 간편결제 때 본 장면이 스테이블코인에서 더 크게 반복될 수 있다.
가치는 늘 고객과 가까운 곳으로 간다. 고객이 여는 앱, 고객이 받는 혜택, 고객이 반복해서 쓰는 결제 수단이 힘을 갖는다. 은행은 오랫동안 돈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돈이 어디에 머무느냐보다, 돈이 어디에서 쓰이고 어떤 혜택을 받느냐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OUSD가 반드시 성공해야 이 변화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OUSD가 실패해도 비슷한 시도는 계속 나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품 하나의 성패가 아니다. 질문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질문은 “스테이블코인을 믿을 수 있느냐”였다. 지금의 질문은 “스테이블코인에서 나오는 이익을 누가 가져가느냐”다.
서클 주가 급락은 하나의 신호다. 더 큰 사건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이자를 독점하던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충격은 은행의 예금과 결제 수익도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됐다는 점이다.
서클은 하루 주가를 잃었다. 은행은 돈이 은행 안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잃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진짜 전쟁은 코인 가격이 아니다. 이자와 결제 수익의 주인을 다시 정하는 싸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