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품은 스마트 계약, '자율 상거래' 시대 연다… 기업 운영 혁신 예고

| 김민준 기자

블록체인과 인공지능의 접점에서 기업 운영의 판이 바뀌고 있다. 단순 명령어 수준에 머물던 스마트 계약 기술이 AI와 결합하면서, 자산과 계약, 데이터에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지능’을 입히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공급망, 유통, 회계 등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서 운영 효율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이더리움(Ethereum)을 비롯한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계약 기술은 ‘이 경우에는 저 조건을 실행하라’는 식의 단순 논리 구조에 의존해왔다. 기술적 안정성과 자동화의 강점을 지니긴 했지만, 복잡한 시장 상황을 고려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AI 모델의 연산 성능이 향상되고 구현 비용이 급감하면서, 그 한계를 빠르게 뛰어넘고 있다.

특히 기업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이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는 점이 주목된다. 예를 들어, 소매업체가 매장에 깔린 수만 개의 제품 재고를 기존 규칙 기반 시스템이 아닌 실시간 AI 분석으로 예측하고 자동 주문할 수 있게 됐다. 겨울 폭풍이 예상되면 자동으로 핫초코를 추가 발주하고, 독감 유행 뉴스가 들리면 감기약 비축량을 조정할 수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AI의 상황 판단과 블록체인의 무결한 실행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자동화가 가능하려면 데이터의 신뢰성과 접근성,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 능력’이 중요하다. 블록체인은 정보를 변경 불가능한 형태로 저장하는 동시에 여러 시스템이 동기화된 환경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 AI가 예측한 수요 정보를 스마트 계약에 반영하면, 중앙 제어 없이도 각 비즈니스 단위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른바 ‘자율 상거래(autonomous commerce)’가 현실화되면, 기업 자산은 더 이상 수동적 요소가 아니다. 데이터 자체가 어떤 사용자에게 제공돼야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지 판단하고 이를 거래의 기준으로 삼는 식의 자기결정권까지 부여받게 된다. 높은 유연성과 저렴한 실행 비용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변화는 곧 재고 부족, 과잉 재고, 운송 지연 등 구조적인 비효율을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모든 기업에 동등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예상보다 느리게 확산되어 왔다. 컴퓨터나 전기처럼 혁신적 기술도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을 끌어내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경제학자들은 지적한다. 조지 메이슨 대학의 타일러 코웬 교수가 말했듯, AI 역시 그 진정한 효과가 표면화되기까지는 상당한 ‘러닝 커브’를 요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주저할 필요는 없다. 선도적 기업들은 항상 기술 전환기에서 선점 효과를 누려왔다. 초기 전자상거래 기업이나 클라우드, 모바일 솔루션 선도 기업들이 수십 년간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온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지금 블록체인과 AI의 접점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기술 혁신 또한 그러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단기적 유행이 아닌 점진적이고 구조적인 기술 전환의 서곡이다. AI가 계약을 만들고, 데이터를 평가하고, 자산을 스스로 최적화하며, 이 모든 논리와 실행이 블록체인 위에서 전개되는 ‘지능형 상거래 시스템’이 도래하고 있다. 언제부터 이 흐름에 동참할지는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다. 늦게 움직인다면 얻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