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의 인공지능 활용을 가로막아온 망분리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히면서, 금융 규제 체계가 기술 변화에 맞춰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보안 사고를 막기 위해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해온 현행 제도가 인공지능 전환, 이른바 에이엑스 시대에는 오히려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이 위원장은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일정 수준의 보안 역량을 갖춘 금융회사가 보안 강화를 목적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려 할 경우 전문가 심사를 거쳐 망분리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방안을 6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보안 수준과 인공지능 활용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금융회사는 엄격하게 선별해 망분리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망분리는 해킹과 정보 유출을 막는 대표적 규제였지만, 생성형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업무 효율과 보안 고도화를 위해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져왔다.
이 위원장은 부동산 금융과 소비자 보호 현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비거주 1주택자의 투기성 대출 규제와 관련해서는 아직 확정된 안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수도권 은행권이 보유한 수도권 규제지역 아파트 1주택 전세대출 규모가 약 9조2천억원, 5만9천건 수준인 만큼 현황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 즉 이엘에스 불완전판매 제재안이 금융감독원으로 다시 돌아간 이유에 대해서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여러 금융회사가 연루된 첫 대규모 제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관계와 법률 적용을 보다 엄밀하게 따져야 다른 유사 사건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상자산과 금융지주 지배구조 문제에서는 제도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되 속도 조절에 무게를 실었다. 하나은행의 두나무 지분 투자와 관련해 시장 일각에서 제기된 금가분리 완화 해석에 대해서는, 2017년 말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참여 제한이 당시 투기 과열에 대응한 긴급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금은 글로벌 시장 환경이 달라졌고,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가상자산법 2단계 입법도 추진 중인 만큼 이용자 보호와 금융안정, 국제 흐름을 함께 보며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제한 법제화 여부에 대해서는 최고경영자 연임 절차의 공정성과 이사회 독립성 강화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현장에서 이너서클과 참호구축 같은 폐쇄적 지배구조를 어떻게 끊어낼지가 핵심 과제라고 짚었다.
은행의 자금 공급 기능과 포용금융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의 역할 재설계를 강조했다. 위험가중자산, 즉 은행이 자산별 위험도를 반영해 쌓아야 하는 자본 규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두 차례 완화가 이뤄졌고 투자 자산과 정책형 펀드, 운영 리스크, 구조적 외환 포지션까지 조정 범위를 넓혔다고 설명했다.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은 15%에서 20%로 올렸지만 시장 상황과 정책 목표를 보며 추가 개선 가능성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포용금융과 관련해서는 금융 시스템을 제도권 금융, 정책 서민금융, 대안적 금융의 3개 층으로 나눠 설명하며, 현재는 제도권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수요가 정책금융으로 몰리면서 그 아래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은행이 우량 차주 위주로만 대출을 취급하면서 중저신용자는 높은 금리 시장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금리 단층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용평가모형 역시 과거 연체 이력 중심에서 벗어나 소득 구조 변화와 다양한 비금융 정보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고, 하반기부터 7개 시범 운영되는 소상공인 특화 평가 모델을 통해 새 방식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에 대해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를 전제로 글로벌 규제 정합성을 맞추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교육 이수와 예치금 납부, 기초자산 선정 기준 강화 등을 통해 과도한 변동성 확대를 막겠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날 발언은 금융위원회가 기술 혁신, 자산시장 변화, 취약차주 보호, 가상자산 제도화 같은 여러 과제를 한꺼번에 다루면서도 규제 완화와 건전성 관리 사이 균형점을 찾으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금융권에 대한 규제 틀이 일률적인 사전 제한에서 역량 심사와 사후 관리 중심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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