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태계를 선도하고 있는 델(Dell)의 투자 자회사 델 테크놀로지스 캐피털(Dell Technologies Capital, DTC)이 호황을 맞고 있다. AI 서버 수요 급증 속에서 본사 실적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투자 부문 역시 최근 5건의 엑시트(기업공개 및 피인수)를 기록하며 벤처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까지 총 165개 스타트업에 18억 달러(약 2조 5,900억 원)를 투입한 이 벤처 캐피털은 AI 기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DTC의 투자 전략 중심에는 '데이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고품질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다니엘 닥터(Daniel Docter) 매니징 디렉터는 "AI는 결국 데이터의 문제"라며 “초기에는 단순한 단어였던 데이터가 이제는 맥락, 작업, 추론 등 복합적인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DTC는 이러한 철학에 따라 시드 및 시리즈 A 단계에서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체 신규 투자 중 80% 이상을 리드하거나 공동 리드하고 있다. 평균 체크 사이즈는 200만~1,200만 달러 수준으로, 연간 약 15~16건의 신규 투자를 집행한다. 전략 목적보다 순수한 수익성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어, 델과의 시너지는 후속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구축된다.

최근 엑시트 사례에서도 이 같은 성과가 드러난다. 보안 스타트업 넷스코프(Netskope)의 기업공개를 포함해 메타(페이스북 모회사)가 인수 예정인 AI칩 스타트업 리보스(Rivos), 벡터 캐피털에 매각된 데이터 플랫폼 싱글스토어(SingleStore), IFS에 인수된 고객 지원 자동화 솔루션 더룹스(TheLoops), 세일즈포스가 인수한 제조 산업용 SaaS 솔루션 리그렐로(Regrello) 등이 DTC 포트폴리오 기업이다.

AI 관련 스타트업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투자처로는 엣지 컴퓨팅 칩을 개발하는 시마.ai(SiMa.ai), GPU 온디맨드 플랫폼 런팟(Runpod), 데이터 어노테이션 자동화 기업 슈퍼애노테이트(SuperAnnotate), 게임 개발용 생성형 AI 플랫폼 시리즈 엔터테인먼트(Series Entertainment), 복잡한 고객 응대를 처리하는 AI 기업 메이븐 AGI(Maven AGI) 등이 있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델의 파트너 네트워크를 통해 B2B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낸다.

또한 음성 AI와 새로운 AI 아키텍처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스라엘 기반의 AA-I 테크놀로지스와 미국 음성 AI 업체 카르테시아(Cartesia) 등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이며, 신경망 기반의 기존 모델을 넘어선 추론형 아키텍처와 고차원 컨텍스트 처리를 목표로 삼고 있다. 델 테크놀로지스 캐피털 파트너인 엘라나 리안(Elana Lian)은 “데이터가 확장될수록 AI가 접촉하는 영역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평가했다.

인력 구성 측면에서도 DTC는 기술 중심의 색깔이 뚜렷하다. 투자팀의 다수가 전기전자공학(Electrical Engineering, EE) 배경을 갖추고 있어, 하드웨어와 실리콘 수준에서부터 애플리케이션 최적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기술 검토가 가능하다. 닥터 디렉터 역시 휴즈리서치랩 등에서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인텔을 거쳐 2016년 델이 EMC를 인수할 당시 DTC에 합류했다. 리안 파트너 또한 반도체 업계에서의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인텔 캐피탈을 거쳐 지난해 DTC에 합류했다.

이들이 바라보는 AI의 미래는 더 복잡하고, 더 인간 중심적이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철학, 물리학, 경영학 같은 고차원 분야에서 AI의 적용 가능성을 직시하고 있으며, 이를 실제 투자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AI 시대에 데이터가 지닌 의미를 가장 먼저 확장한 이들이, 실리콘밸리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