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가 가상자산을 곧바로 무너뜨리기보다 월가의 블록체인 도입을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융권과 블록체인 업계 모두 공개키 암호 체계를 양자내성 방식으로 바꾸는 과제를 안고 있다.
크리스 퍼킨스(Chris Perkins) 프랭클린 템플턴 크립토 부문 책임자는 25일 포춘 기고문에서 “양자컴퓨터가 가상자산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라며 블록체인이 양자내성 금융 인프라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퍼킨스는 전통 금융 인프라보다 가상자산 업계가 새로운 보안 위협에 빠르게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공개키 암호를 실질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시점인 ‘Q-day’는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관련 기술의 도달 시점에 대해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전망이 엇갈린다고 설명했다.
위협은 가상자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메일, 금융거래, 의료정보처럼 공개키 암호에 의존하는 시스템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암호화된 데이터를 미리 확보한 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해독하는 ‘지금 수집하고 나중에 해독하는’ 공격도 위험으로 제시됐다.
NIST는 2024년 양자내성 암호 표준 3종을 확정하고 조직들이 전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양자내성 암호는 양자컴퓨터와 기존 컴퓨터를 모두 상대로 안전하도록 설계된 암호 방식이다.
암호 체계를 바꾸는 작업은 새 알고리즘을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NIST는 이 전환에 수년에서 10~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으며, 미국 정부 차원의 전환 목표는 2035년으로 제시됐다.
기존 금융 인프라의 업그레이드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퍼킨스는 포춘 기고문에서 국제 금융 메시징 체계인 SWIFT의 현대화에 7년이 걸렸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고액결제 시스템인 Fedwire Funds Service는 2015년 개편을 시작해 2025년 7월 ISO 20022 전환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영란은행도 2025년 4월 28일 새 실시간총액결제(RTGS) 서비스인 RT2를 가동했다. 금융권의 결제·메시징 인프라가 단계적으로 바뀌는 동안 암호 체계까지 전환하려면 기관 간 호환성과 운영 중단 위험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퍼킨스는 이런 전환 속도가 금융권의 양자내성 암호 도입을 늦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가상자산 업계는 공개 소프트웨어와 반복적인 보안 업데이트에 익숙해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새로운 공격에 맞춰 프로토콜을 수정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더리움(ETH)은 양자내성 전환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더리움 재단은 9월 7일 공개한 프로토콜 우선순위 문서에서 실행·합의·데이터 세 계층을 2029년 12월까지 양자내성 상태로 만드는 목표를 제시했다.
다만 이 일정은 공격적인 계획으로 제시됐다. 이더리움 재단은 2027년 1월 외부 전문가 조언을 반영해 일정을 재평가할 수 있으며, 개발 상황에 따라 정확한 완료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더리움 로드맵에는 계정이 새로운 서명 방식을 채택할 수 있도록 계정 추상화와 유연한 서명 구조를 개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핵심은 네트워크 전체를 한 번에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갑과 계정이 새 서명 체계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는 데 있다.
코인베이스($COIN) 양자컴퓨팅 자문위원회는 2026년 보고서에서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언젠가 주요 블록체인의 암호 체계를 깰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현재 그런 장비는 존재하지 않으며, 수백만 개 지갑과 거래소·하드웨어·네트워크를 새 서명 체계로 옮기는 일이 주요 과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금융기관과 디지털자산 인프라의 양자내성 전환 논의는 결제·청산·수탁·고객 인증 체계가 서로 맞물려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양자컴퓨터의 등장 시점과 실제 공격 가능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 확인된 일정은 NIST의 표준 전환 권고와 이더리움 재단의 2029년 12월 목표이며, 향후 일정은 외부 전문가 검토와 개발 진행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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