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투자자가 1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를 악용한 돈세탁과 불법 외환거래(환치기) 등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들어 가상자산을 통한 의심스러운 금융거래 보고 건수가 최근 4년간 누적치보다 더 많은 수준으로 집계되며, 당국의 감시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가상자산사업자로부터 접수된 의심거래보고서(STR)는 총 3만6천684건에 달했다. 이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보고된 건수(총 2만7천72건)를 한 해도 채 지나지 않아 넘어선 것이다. STR은 자금세탁 또는 불법 송금이 의심되는 거래를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제도로, 금융기관 및 가상자산사업자는 현행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이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특히 가상자산을 이용한 환치기 수법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식 외환 경로(외국환은행)를 우회해 해외에서 구매한 가상자산을 국내로 전송한 뒤 다시 현금화하는 방식인데, 이는 외환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검찰에 넘겨진 가상자산 기반 외환범죄 규모는 약 9조5천억 원으로, 이 중 90% 이상인 8조6천억 원가량이 환치기 범죄에 해당했다.
이와 함께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불법 송금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등 실물 자산과 연동돼 가치 변동이 적은 가상자산이다.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통해 571억 원 상당의 자금이 불법 송금된 사건이 적발된 바 있다. 이는 환전상이 러시아 기업과 연계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국내에서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실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준 의원은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상품이나 서비스 결제에 폭넓게 사용되면서, 불법 외환거래와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관련 기관들이 범죄 추적 및 신종 수법에 대한 대응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관세청과 FIU가 공조해 위장 송금, 불법 환전 등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위험도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당국의 관련 규제 정비와 감시 체계 확충이 늦어진다면, 자본 유출 및 금융 질서 혼란이라는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