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에너지 공기업과 배터리·AI 기업이 지속가능채권 시장에서 자금 조달 사례를 늘리고 있다. 전력 공급 안정성과 탈탄소 투자가 동시에 요구되면서 녹색채권과 전환채권이 기업 자금 조달 통로로 활용되는 흐름이다.
스웨덴 소재 싱크탱크 AFII는 21일 자료에서 올해 1~7월 아시아에서 발행된 GSS 채권이 약 1510억 달러(약 210조원)로, 지난해 전체 발행 물량의 약 55%에 달했다고 밝혔다. GSS 채권은 녹색채권, 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을 포괄하는 채권이다.
AFII는 아시아 GSS 채권 시장에서 위안화 비중이 주춤한 사이 원화, 호주달러, 유로화 등으로 발행 통화가 다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한국 기업의 발행 사례가 에너지 전환, 배터리, 데이터센터 투자와 맞물려 부각됐다.
배터리와 태양광 제조 등 저탄소 전환 관련 산업에서는 SK배터리아메리카, LG에너지솔루션, SK온, 한화큐셀아메리카가 GSS 시장을 활용한 기업으로 거론됐다. 공기업이 먼저 물꼬를 튼 뒤 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라는 평가다.
공기업 발행도 이어졌다. AFII는 한국동서발전이 한국 유틸리티 기업으로는 처음 달러화 기후전환채권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이 채권은 석탄 비중이 높은 발전사가 전환 라벨이 붙은 채권으로 투자자 수요를 확인한 사례로 제시됐다.
기후전환채권은 탄소 배출이 큰 산업이 저탄소 구조로 이동하는 과정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채권이다. 일반 녹색채권이 이미 친환경 성격이 분명한 사업에 초점을 맞춘다면, 전환채권은 기존 배출 산업의 개선 경로와 자금 사용처를 함께 따진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동서발전의 2026년 녹색·기후전환 금융 프레임워크에는 기존 석탄 자산을 대체하거나 전환하는 LNG 복합발전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AFII는 이 구조를 일반적인 가스 금융이 아니라 프로젝트 기반 전환 사례로 봤다.
AI 수요도 지속가능채권 시장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 AFII는 네이버가 지속 가능한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효율성에 연계된 녹색채권을 발행한 사례를 들었다. 칩 생산,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투자가 늘면서 기업의 자본지출 부담이 커지고 관련 자금 조달 수요도 확대되는 구조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냉각 설비를 함께 필요로 한다. 본지는 앞서 국내 기업도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번 GSS 채권 발행 흐름은 AI 인프라 확장이 전력·설비 투자와 금융시장으로 이어지는 단면을 보여준다.
다만 발행 증가가 곧바로 실물 경제의 탈탄소 성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AFII는 “표면적인 GSS 시장 성장이 반드시 더 강력한 기후전환 자금 조달이나 실물 경제의 탈탄소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투자자가 발행사 유형과 조달 자금의 용도를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적채권 분야에서는 한국주택금융공사가 77억 달러(약 10조7107억원) 상당의 원화 소셜본드를 발행한 주요 사례로 언급됐다. 국내 지속가능채권 시장의 발행 목적이 에너지 전환, 배터리 공급망, AI 데이터센터, 주택금융까지 넓어지는 모습이다.
국내 채권시장은 금리와 신용등급, 발행 물량에 따라 수요가 갈리는 구조다. 본지는 앞서 공기업 채권 발행이 조달 비용을 의식해 조정되는 흐름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속가능채권 발행 확대도 발행사의 신용도와 자금 사용처를 함께 따지는 시장 환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