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94조 재정적자에 '증세 압박'… 부유층 엑소더스 본격화

영국의 국가 재정에 약 94조 원 규모의 재정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현 노동당 정부가 결국 증세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증세 방침 탓에 고소득 계층과 해외 자산가들이 대거 영국을 떠나는 등 실질적인 파장이 이미 감지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유력 싱크탱크인 전국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정부의 중장기 재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대 511억 파운드(약 94조 5천억 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금까지 다른 기관들이 경고해왔던 200억 파운드보다 두 배 이상 큰 수치다. NIESR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공지출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면 공공예산 여유분으로만도 99억 파운드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분석은 영국의 경제성장률 둔화가 세수 감소로 직결되고, 동시에 공공부채는 늘어났다는 구조적 요인을 짚고 있다. 특히 정부가 계획했던 복지 지출 감축조차 실행이 지연되거나 축소되면서, 현재의 재정 계획이 현실과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단기적인 세수 확보 없이 예산 균형을 맞추긴 어려운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NIESR는 영국 정부가 조심스럽지만 점진적인 형태로 증세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방법으로는 부가가치세(VAT) 항목 조정, 연금 수당 대상 확대, 그리고 소득세 기준선(면세·적용구간 등) 동결 연장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현 노동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VAT나 소득세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이 같은 권고안을 실행하기엔 정치적인 부담이 크다.

실제 노동당 정부는 근로층 세금 인상은 피하면서, 대신 부유층과 해외 자산가들에게 집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이후 비거주 외국인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자본이득세 강화 등의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이에 반발해 3천790명의 기업 이사들이 영국을 떠났다고 파이낸셜타임즈는 전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천 명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정책 시행이 본격화된 올해 4월에는 전년보다 79%, 2023년 대비 104% 더 많은 이사들이 영국을 떠났으며, 이들의 주요 이주지는 아랍에미리트, 독일, 스페인 등으로 나타났다.

당장의 조세저항과 자본 유출로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영국의 재정 상황은 분명히 정부로 하여금 구조적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세수 기반의 재편 없이는 복지 확대와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노동당 정부가 증세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조율하며, 부유계층의 탈(脫)영국 흐름을 막는 보완 대책을 내놓을지가 주요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