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Crypto Week(크립토 위크)’로 명명한 일주일간의 암호화폐 입법 집중 기간이 19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감독을 규정한 법안은 상·하원을 모두 통과해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마쳤으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 금지와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 정비 등 주요 법안들도 신속히 논의됐다. 시장은 이를 제도화 신호로 받아들이며 비트코인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 스테이블코인 법안, 초당적 지지 속 통과… 트럼프 “미국이 리더 될 것”
이번 입법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감독법(GENIUS Act)’이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연방 또는 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1 비율의 안전 자산(미국 국채, 현금 등) 준비금을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행자는 매월 준비금 내역을 공개해야 하며,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해당 법안은 지난달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17일(현지시간) 하원에서도 찬성 308표, 반대 122표로 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백악관에서 공식 서명식까지 마쳤다. 그는 “이번 조치는 미국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디지털 금융은 미국 경제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 테더 CTO 파올로 아르도이노, 서클 CEO 제레미 알레어 등 주요 업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 시장 구조 정비 법안과 CBDC 금지 법안도 속도
스테이블코인 법안 외에도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법(CLARITY Act)’과 ‘CBDC 감시국가 금지법(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이 함께 논의됐다. CLARITY 법안은 암호화폐를 상품과 증권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이에 따라 상품은 CFTC, 증권은 SEC가 각각 관할하도록 정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으며 현재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CBDC 금지 법안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일반 국민에게 발행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은 공화당이 주도한 가운데 218대 210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하원을 통과했으며, 상원에서는 민주당 측의 반대가 예상된다. 공화당은 정부의 금융 감시 강화에 대한 우려를 강조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금융 포용성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 비트코인, 정책 기대감에 사상 최고가… 시총 4조 달러 돌파
정책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시장은 강하게 반응했다. 비트코인은 14일 장중 한때 12만2055달러까지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19일 현재 12만30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더리움도 3천달러 선을 회복하며 5개월 만에 최고가를 경신했다.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이번 주에만 2천억 달러 이상 증가해 4조 달러를 돌파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제도적 틀이 명확해지면서 기관 투자자의 진입이 활발해질 것”이라며 “향후 ETF, 결제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물경제와의 접점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 정치 지형도 변화… 트럼프의 전략적 전환
눈에 띄는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다. 지난 대선 당시 암호화폐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그는 최근 지지층 확대와 경제 혁신 이미지 부각을 위해 정책 전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이 암호화폐 관련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해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주당의 맥신 워터스 의원은 “이번 입법은 암호화폐 업계를 위한 규제 면제 선언에 가깝다”며 “소비자 보호와 금융안정에는 오히려 역행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디지털 자산, 제도화 흐름 본격화… 한국도 전략 필요
이번 ‘Crypto Week’를 통해 미국은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첫 단추를 채웠다.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정의부터 발행 요건, 감독 주체, 시장 거래 구조까지 큰 틀이 마련됐고, 중앙정부의 디지털화폐 정책 방향도 보다 명확해졌다.
이에 따라 글로벌 핀테크 기업과 결제 인프라 업체들은 미국 시장 진입 및 확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규제 명확화에 따라 기존의 무허가 발행이나 불투명한 구조를 가진 프로젝트들은 상당한 구조조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역시 이에 대응할 시점이다. 디지털 원화 발행 논의, 민간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디지털 자산 세제 및 투자자 보호 방안 등 각종 정책이 아직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가운데, 미국의 사례는 중요한 기준선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금융위원회와 국회는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제도권 편입 가속… 한국의 대응은?
미국의 ‘Crypto Week’는 단순한 입법 주간이 아니다. 그것은 암호화폐가 더 이상 그림자 금융이 아닌, 제도권 안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금융질서로 편입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비트코인의 사상 최고가, 대규모 기관 투자 유입,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지지 선언은 그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글로벌 흐름에 뒤처질 것인가, 아니면 제도화된 디지털 자산 질서를 선도할 것인가. 그 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