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직전 미국 주택시장 붕괴를 예측해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의 실제 인물로 유명해진 마이클 버리가 이번에는 인공지능(AI) 열풍에 역베팅을 걸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버리가 이끄는 사이언 자산운용(Scion Asset Management)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포트폴리오의 약 66%를 팔란티어(Palantir) 풋옵션, 13.5%를 엔비디아(NVIDIA) 풋옵션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자산의 80% 가까이를 AI 대표주의 주가 하락에 베팅한 셈이다.
시장은 이를 단순한 헤지(위험 회피)가 아닌 ‘확신 매도’로 해석하고 있다. 버리가 평소보다 일찍 SEC 보고서를 제출한 점도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통상 분기 말에 보고서를 내던 그가 이번에는 예정보다 앞서 서류를 제출하면서 “시장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AI 버블 우려 커지는 시장
버리의 구체적인 발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포지션을 두고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AI 산업 전반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비이성적으로 높다”는 경고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AI 관련주의 대표격인 엔비디아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70배에 달하며, 팔란티어는 700배를 넘는다. 반면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구글클라우드 등 주요 클라우드 사업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평가 국면이 1999년 닷컴버블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 “엔비디아, 실리콘밸리의 유동성 공급자”
시장 일각에서는 엔비디아를 “실리콘밸리의 중앙은행” 또는 “유동성 공급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AI 스타트업들이 막대한 GPU(그래픽처리장치) 구매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이 다시 엔비디아의 실적을 떠받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 월가 애널리스트는 “AI 생태계가 실질 제품보다 GPU 소비량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기업 가치가 매출이 아니라 향후 설비투자(CapEx) 약속에 의해 뒷받침되는 기형적 구조”라고 평가했다.

■ “AI는 남고, 주가는 식을 수 있다”
버리의 이번 베팅이 성공한다면 AI 대표주의 조정 가능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전문가들은 “AI는 장기적으로 산업을 바꿀 기술이지만, 주식시장의 기대치는 현실보다 훨씬 앞서 있다”며 “AI 거품이 꺼질 경우 단기적으로 30~50%의 가격 조정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버리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를 예견하며 ‘빅쇼트’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이번 행보가 또 한 번 시장의 과열을 꿰뚫은 통찰이 될지, 혹은 지나친 조기 경고로 끝날지는 시장의 다음 움직임이 말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