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증권 임민호 선임매니저는 디파이와 전통 금융이 구조적으로 상충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며 향후 디파이의 제도권 편입은 무허가 모델이 아닌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에셋증권 임민호 선임매니저는 12월 16일 서울 강남 해시드라운지에서 열린 ‘디파이와 전통금융의 협력과 확장 전략, 하이브리드 금융 시대의 비전’ 행사에서 ‘기관용 디파이 사례와 제도권 편입을 가르는 핵심 허들’을 주제로 발표했다.
임 선임매니저는 “근본적으로 전통 금융과 디파이는 그대로 공존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존재한다”며 “디파이의 핵심은 퍼미션리스 구조, 탈저항성, 누구나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개방성에서 비롯된 풍부한 유동성인 반면 금융의 본질은 리스크 관리와 거래 상대방의 식별, 책임 소재의 명확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차이는 책임 구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하이퍼리퀴드와 같은 디파이 환경에서 주문 오류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가 불명확하지만 업비트,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과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는 주문 사고가 발생하면 명확한 배상 책임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디파이가 전통 금융에 바로 적용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한계라는 설명이다.
임 선임매니저는 디파이의 제도권 편입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세 가지 리스크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스마트컨트랙트 리스크다. 디파이는 코드로 작동하는 구조인 만큼 취약점이 발견돼 자금 탈취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물을 대상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디파이는 법인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조달방지(CFT) 리스크다. 그는 “거래 상대방이 라자루스와 같은 제재 대상일 경우, 익명성으로 인해 이를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KYC를 받은 참여자만 유동성을 공급하도록 설계할 경우 디파이의 핵심인 유동성이 급감해 시너지가 약화되는 구조적 딜레마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는 오라클 리스크다. 블록체인 상의 거래 기록은 불변성을 가지지만 외부 정보를 온체인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입력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라는 가짜 정보가 오라클을 통해 유입되면, 이를 기반으로 대규모 청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 선임매니저는 이러한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해서 디파이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스크를 완화하면서 디파이를 활용하는 대표적 사례로 코인베이스를 들었다. 코인베이스는 이용자에게 KYC·AML을 의무화한 뒤 이들을 디파이 환경으로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어 코인베이스의 두 가지 구체적 사례를 소개했다. 첫 번째는 ‘버리파이드 풀(Verified Pool)’이다. 해당 구조에서는 KYC를 완료한 주체만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으며 베이스 앱 기반 셀프 커스터디 월렛과 온체인 신원 증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지갑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돼 AML·KYC 리스크를 크게 줄였다.
두 번째는 비트코인 담보 대출 사례다. 코인베이스는 KYC·AML을 통과한 이용자만 비트코인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대출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이를 위해 퍼미션리스 디파이 프로토콜인 몰포(Morpho)를 활용했다. 몰포는 볼트별로 유동성을 분리해 하나의 풀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풀로 리스크가 전이되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코인베이스는 제한적인 퍼미션리스 구조를 활용하면서도 리스크 전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임 선임매니저는 이어 실물자산 토큰화(RWA)와 토큰증권(STO)의 결합 사례를 소개했다. 증권을 토큰화할 경우, 이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차입하다 청산이 발생하면 소유권 이전 문제가 발생하는데 증권은 반드시 법적으로 소유권을 등록·관리하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례로 미국의 호라이즌 마켓(Horizon Market) 구조를 언급했다. MMF 토큰 같은 RWA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차입할 수 있는 모델인데 유동성 공급은 일반 투자자도 가능하지만 차입자는 KYC를 완료한 기관 투자자로 제한된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딜러, 트랜스퍼 에이전트, ATS 라이선스를 모두 보유한 시큐리타이즈(Securitize)가 소유권 이전을 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디파이와 RWA를 제도적으로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사모 크레딧 펀드를 토큰화한 아폴로 사례도 소개했다. 토큰화된 자산의 소유권은 시큐리타이즈가 관리하고 이후 건틀렛(Gauntlet)과 같은 리스크 관리자가 몰포를 통해 레버리지 투자를 수행하는 구조다. 그는 “이는 RWA, 디파이, 자산운용 영역까지 확장된 사례”라고 평가했다.
임 선임매니저는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듯, 토큰화 증권과 디파이가 결합하기 위해서는 라이선스를 보유한 플레이어가 핵심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ATS, 브로커딜러, 트랜스퍼 에이전트 라이선스를 보유한 시큐리타이즈가 이 시장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에서 논의된 디파이 혁신 면제와 관련해 시타델이 반대 의견을 제출한 점도 언급했다. 임 선임매니저는 “핵심은 ‘동일 기능에는 동일 규제’라는 원칙”이라며 “주식 토큰을 거래하면서 증권법 규제를 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컨트랙트로 운영되더라도 중개 기능이 존재한다면 라이선스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미래에셋증권 역시 한국, 홍콩, 인도 등에서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향후 토큰화된 증권과 규제 적합 디파이를 연결하는 라이선스 기반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에이션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AML 문제를 지목했다. 스마트컨트랙트는 규칙 집행에는 강하지만, 행위 패턴을 예측해 이상 거래를 탐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믹서 서비스인 토네이도 캐시와 같은 사례 역시 추적 기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완전한 차단이 어렵다는 점을 현재 디파이 제도화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임 선임매니저는 “결국 디파이는 무허가 구조를 유지한 채 제도권에 편입되기보다는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통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며 “전통 금융과 디파이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라 점진적 수렴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디파이와 전통금융이 대립 구도를 넘어 협력과 결합의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흐름을 조망한다. 글로벌 메인넷과 디파이 프로젝트, 금융기관, 정책·법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술 혁신과 제도권의 요구를 함께 논의하며 현실이 된 하이브리드 금융으로의 전환 흐름을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