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커스텀 스테이블코인’ 실험에 본격 착수했다. 핀테크 기업 플립캐시(FlipCash)가 코인베이스의 인프라를 빌려 자체 브랜드의 달러 연동 코인 ‘USDF’를 찍어내는 식이다. 바야흐로 스테이블코인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업이 블록체인 기술을 몰라도, 코인베이스에 의뢰만 하면 자사 로고가 박힌 ‘돈’을 만들어 급여를 주고 결제를 하는 세상. 이것은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융 제조’의 현장이다.
이 뉴스를 접하며 여의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씁쓸하게도, 한국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다. 미국이 ‘GENIUS 법’을 통과시키며 규제의 족쇄를 풀고, 기업들이 달러 기반의 디지털 경제 영토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동안, 한국은 여전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정의조차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코인베이스의 이번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단순히 거래 수수료를 따먹는 거래소 모델을 넘어섰다. 서클(Circle)의 USDC를 담보로, 누구나 자신만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돕는 ‘금융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했다. 이는 마치 아마존이 AWS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인터넷 기업을 창업하게 해준 것과 같은 ‘화폐의 클라우드화’다. 이제 미국의 핀테크, 유통, 게임사들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무기 삼아 국경 없는 비즈니스를 펼칠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국내 기업이 블록체인 기반의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려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원화 코인’이 없다. 법인 계좌 발급조차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언감생심이다. 금융 당국은 여전히 자금 세탁이나 테라-루나 사태의 트라우마를 이유로 “신중 검토”라는 낡은 레코드판만 돌리고 있다.
우리가 주저하는 사이, 글로벌 시장의 표준은 ‘디지털 달러’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코인베이스와 같은 플랫폼이 제공하는 ‘스테이블코인 OEM’ 서비스가 확산되면, 한국의 기업들조차 편의성을 이유로 원화 대신 USDF 같은 달러 코인을 쓰게 될지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통화 주권 상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술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규제’의 대상이 아닌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바라보고 대량 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한국이 지금처럼 법안을 만지작거리며 골든타임을 허비한다면, 우리는 영영 디지털 금융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
더 이상 “검토 중”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이 OEM 방식으로 디지털 달러를 전 세계에 뿌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기업들이 안전하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샌드박스를 부수고 빗장을 열어야 한다. 혁신을 막는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