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체 정보 시스템의 재난 대응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행정 시스템 마비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민간 기업들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엄격한 통신 재난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9월 26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된 무정전 전원 장치(UPS)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주요 전산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멈춘 바 있다. 이 사태로 인해 각종 행정 서비스가 마비되며 정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민간 기업들에게 재난관리계획 수립 의무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황정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부터 통신 재난관리 기본계획 수립이 의무화되는 대상에는 통신 3사를 비롯해 부가통신사업자와 데이터센터 사업자 등 총 29개 기업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는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삼성헬스 등 일평균 사용자 수나 트래픽 비중 기준에 따라 선정된 기업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들 서비스는 직접적인 국민의 생명·안전과 큰 연관이 없는 만큼, 동일한 재난관리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가 한동안 마비된 사건 이후,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 기업들을 대상으로 재난 대비 체계 구축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전력 용량이나 시설 규모 기준 규정을 강화하고, 무정전 전원장치 관리 기준도 정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정부 전산망 화재 사건을 두고 정부가 스스로는 클라우드 기반의 재난복구 환경을 구비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형식적 규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 당시에도 우회망이 구축되지 않아 장시간 통신 장애가 이어졌고, 이후 정부는 민간 통신망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대형 장애와 이번 국가 시스템 중단 사태는 정부의 학습 부족과 구조적 미비를 다시금 드러낸 셈이다. 특히 향후 게임회사 등 추가적인 부가통신사업자들도 재난관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논란은 더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의 정보통신 정책이 법적 형평성과 행정 실효성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가 스스로의 시스템부터 재난대응 체계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민간에게 부과되는 규제 역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와 함께 디지털 기반 행정 환경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공공과 민간 모두의 균형 잡힌 재난 대응 체계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