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주요 서비스망이 중단되면서, 금융과 행정은 물론 국민 생활 전반에 큰 차질이 생겼다.

불씨는 지난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시작된 화재에서 비롯됐다. 해당 전산시설은 정부 전산망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중앙행정기관뿐 아니라 우체국 금융, 보험, 모바일 신분증, 민원서류 발급에 이르는 다양한 공공 서비스의 정보기술(IT) 운용을 담당한다.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에 따른 불로 인해 무려 647개의 정부 시스템이 한꺼번에 작동을 멈췄고, 그 여파로 전국 곳곳에서 시민 불편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우체국의 금융 서비스와 우편 시스템이 마비되며 하루 일정을 계획했던 많은 시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려던 이용자들은 결제나 송금이 되지 않아 곤란을 겪었고, 기업이나 소상공인들도 기존 우체국 물류 시스템에 의존하다 처리 지연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다. 모바일로 운용되던 우체국 앱 사용자들도 앱 실행 자체가 안되면서 이체 서비스는 물론, 계좌 확인도 불가능한 상황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 여파는 일선 의료기관과 대중교통 현장에서도 나타났다. 모바일 신분증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병원 접수에 문제가 생기거나, 무인민원발급기를 통한 등본 출력이 중단돼 연안여객터미널 탑승 절차에도 차질이 생겼다. 정부의 디지털 전환 기조에 따라 여러 인증 서비스가 연계된 만큼, 하나의 시스템 장애가 여러 지점에서 도미노처럼 번지는 양상이다. 일부 여객선 운항관리 기관에서는 일시적으로 사진 등의 대체 수단으로 신원 확인을 진행한다고 공지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정부 전산망과 연계된 시스템의 중단으로 민원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전북도와 전남도 등은 해당 문제를 홈페이지 공지로 안내하면서 주요 기능이 정상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공인인증서 기반 접속이나 전자문서 유통 시스템이 멈춘 상태라, 지자체 내부에서도 업무 효율성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토로가 나온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 메신저로 문서를 주고받고 있으며, 팩스로 외부 기관과 소통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재난 대응 시스템이다. 119 긴급신고 체계에서는 전화 신고는 가능하지만 위치 자동 추적, 영상 및 문자 신고 같은 다매체 신고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위기 대응력이 저하됐다. 일부 경찰서에서는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라도 신고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체계가 다시 제 자리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건은 정부 디지털 시스템이 특정 기관에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 전체 사회 기능이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향후에는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특정 서비스에만 영향을 주도록 하는 분산형 시스템 설계, 그리고 보다 유연한 백업 체계 확립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와 관계 기관이 재난 대응 관점에서의 IT 핵심 인프라 분산화와 관리체계 전면 점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