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핵심 전산 시스템이 화재로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시설 노후화와 미비한 재난대응 체계가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산망 이중화와 같은 구조적 보완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2025년 10월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해,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발생한 전산망 마비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해 평가했다. 윤 장관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너무 빠르게 정보화 사회로 이행한 나머지, 인프라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디지털 정부 1위라는 성과에 안주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전자정부의 국제 순위보다 실제 시스템의 안전성과 복원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차 강조한 발언이다.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는 단순한 화재사고 이상의 문제를 드러냈다. 윤 장관은 노후 장비에 대한 교체와 보완이 부족했고, 특히 서비스 운영을 중단 없이 이어가기 위한 '이중화' 조처가 효과적으로 제도화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민간 기업에서는 이미 널리 도입된 '액티브-액티브' 방식의 재난 복구 시스템(DR 시스템)을 행정부문도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방식은 상시 운영되는 두 개의 전산센터가 동시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체계로, 어느 한쪽에 문제가 발생해도 공백 없이 서비스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한편, 이번 사태의 직접적 관리 책임이 있는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2023년부터 논의돼온 DR 이중화 시스템의 도입이 미뤄진 데 대해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특히 그는 과거 소방당국의 화재안전조사를 일부러 피했던 정황도 시사했다. 그 이유로 전산실 내에 장착된 소화 시스템의 작동 위험을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안전 점검을 빠뜨린 것이었다며 부적절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해당 전산실에 있던 리튬배터리의 충전율 역시 국내 가이드라인 기준(30% 이하)을 크게 초과한 80% 수준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번 사고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예산과 제도 미비까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윤 장관은 DR 시스템 관련 예산으로 기획재정부에 75억 6천만 원을 요청했지만, 실제 반영된 예산은 29억 5천만 원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대전센터를 중심으로 이중화 체계를 시험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었으며, 향후 국회 논의를 통해 추경 확보나 예비비 투입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한국 공공 IT 시스템이 세계적 수준의 전자정부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과 안전 대응 체계 면에서는 허점이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 계기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노후화된 인프라와 재난 복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 나갈 방침이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전체 행정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 안정성과 복원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