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주요 업무 시스템이 일시에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적용된 민간 클라우드 환경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가 시대에 뒤처졌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핵심은 실시간 백업 및 재난복구(Disaster Recovery, DR)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통합전산센터가 처음 세워졌던 20년 전만 해도 대전 본원과 광주 센터 사이에 이중화 구성이 되어 있어 한쪽 시스템에 장애가 생겨도 다른 센터에서 즉시 업무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스템 현대화에는 소극적이었고, 이번처럼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본원의 서버가 멈추자 대체 수단이 작동하지 않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윤건영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정자원 대전 본원의 전체 시스템 중 서버에 DR 시스템이 마련된 비율은 고작 4.3%에 불과하며, 데이터 저장장치(스토리지)에 대한 백업은 2.9% 수준이다. 사실상 전산 재난에 대응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예산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데, 재난 대응 항목은 늘 예산 배정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관행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한 이중화 체계 도입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비용이 큰 부담이다. 기존의 온프레미스 방식에 비해 클라우드 기반의 다중지역(멀티리전) 동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수조 원대의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정부 측 설명이 나온다. 국정자원은 지난해 클라우드 업체들과 관련 기술 컨설팅을 마쳤고, 이달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화재 사고로 그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이번 사태는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디지털 플랫폼 정부 정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계기이기도 하다. 부처 간 칸막이 해소와 정보공유 촉진을 목표로 했던 해당 정책은 정권 말기 동력이 소진되며 흐지부지 되었고, 공공정보의 클라우드 전환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클라우드 기술의 민간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독과점, 해외 정보 유출 우려, 복잡한 규제 체계 등이 이를 가로막았다.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정보원이 각각 나눠서 보안·운영 지침을 따로 관리하는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이번 데이터를 계기로 정부는 단기 복구 작업은 물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디지털 기술에 점점 더 깊이 의존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디지털 재난’에 대한 장기적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사고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향후 클라우드 기반 이중 백업 체계 확충과 DR 훈련 정례화 등이 주요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