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 시장에서 ‘애플리케이션’보다 ‘기초 모델’과 핵심 인프라를 만드는 기업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국 출신 창업자이자 투자자인 알렉산더 카르도스-니하임은 최근 “지금 AI에서 장기 가치가 쌓이는 곳은 가장 아래층, 즉 ‘파운데이셔널 AI’”라고 진단했다.
그는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 과정을 밟던 중 AI 연구기업 세이프 사인 테크놀로지스를 공동 창업했고, 약 20개월 뒤 톰슨로이터에 회사를 매각했다. 당시 톰슨로이터가 매출이 발생하기 전 회사를 인수한 것은 170년 역사상 처음이었다. 카르도스-니하임은 “회사가 인수된 이유는 제품보다 ‘과학’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세이프 사인 테크놀로지스는 케임브리지, 딥마인드, 하버드대, MIT 출신 연구진과 함께 법률 추론에 강한 모델을 개발했다. 그는 자사 기술이 대형 연구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높은 성능을 냈다고 주장했다. 다만 투자 유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기술력보다 제품과 매출 가능성을 먼저 물었고, 영국 투자자들은 대체로 투자를 망설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자금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조달했다.
1분기 178억달러 몰린 파운데이셔널 AI… 97%는 3곳에 집중
카르도스-니하임은 2026년 1분기 파운데이셔널 AI 스타트업 자금 조달 규모가 약 178억달러, 원화 약 27조1560억원에 달했다고 짚었다. 시장이 AI의 장기 수익원이 ‘기초 모델’과 시스템 레이어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다만 자금 쏠림은 심했다. 오픈AI, 앤트로픽, xAI가 전체 투자금의 약 97%를 가져갔고, 나머지 전 세계 파운데이셔널 AI 기업들은 극히 적은 몫을 나눠 가졌다. 이 때문에 초기 딥테크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승부가 끝났고, 대형 모델 위에서 서비스를 얹는 편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질 수 있다고 그는 봤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 지점이 ‘착시’라고 강조했다. 다른 회사가 만든 모델에 의존하는 애플리케이션 기업은 가격 정책과 접근 권한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 더구나 상위 모델 기업이 원하면 해당 시장을 직접 흡수할 수도 있다. 반면 훈련 효율, 모델 구조, 추론 비용, 신뢰성, 해석 가능성, 안전성 같은 문제를 푸는 기업은 AI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하부 레이어’를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딥마인드급 기술팀인가”… 투자 판단 기준도 달라져야
카르도스-니하임은 AI 창업자를 볼 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밝혔다. 기술팀이 과학자 대 과학자 기준으로 딥마인드와 맞설 수준인지, 해결하려는 문제가 모델과 시스템 차원에 있는지, 그리고 지금 당장 초기 매출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5년 동안 더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 될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딥마인드와 오픈AI 역시 처음에는 뚜렷한 제품 없이 연구 중심 조직으로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전통적인 초기 소프트웨어 투자 기준으로는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였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가장 중요한 기업이 됐다는 것이다. 결국 기초 문제를 푸는 회사는 한동안 ‘투자하기 어려운 기업’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필연적인 선택’으로 바뀐다는 논리다.
단기 매출보다 ‘스택 전체가 의존할 기술’이 중요
그는 분기 실적에 맞춰 ‘투자받기 좋아 보이는 회사’를 만들기보다, 미래에 AI 스택 전체가 의존할 기술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지금처럼 딥테크 자본시장이 익숙한 이름에 자금을 몰아주는 국면일수록, 유행을 따르지 않고 어려운 기초 문제를 먼저 푸는 창업자가 결국 시장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번 주장은 AI 투자 열기가 여전히 뜨거운 가운데, 어디에 진짜 가치가 축적되는지 다시 묻는 목소리로 읽힌다. 겉으로 보이는 서비스 확장보다, 보이지 않는 기반 기술 경쟁력이 앞으로 AI 산업의 승자를 가를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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