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포스트는 김형중 교수와 함께 대형 기획 연재「한국 암호화폐 개척자들(Korean Crypto Frontiers: The Untold Stories)」을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 암호화폐 산업의 뿌리를 복원하고, 기록되지 않았던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되며, 본 기사에는 스토리의 일부만 실립니다. 전체 내용은 frontier.tokenpost.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로저 버가 1999년에 컴퓨터 부품을 파는 메모리딜러스(MemoryDealers.com)를 설립했다. 2002년 로저 버는 면허 없이 이베이에서 폭발물을 판 죄로 10개월 연방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때 그는 감옥에서 담배나 우표 또는 국수가 교환의 매개체, 즉 화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팔았다는 폭발물은 폭죽이었다.
그가 10개월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후로도 3년간 보호관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자유로운 몸이 된 그는 2005년 거처를 일본으로 옮겨 거기서 4년을 보냈다. 로저 버에게 다행스러웠던 건 그가 감옥에 있을 때나 형기를 마친 이후의 험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도 메모리딜러스는 여전히 그의 것이었다.
이흥직은 1996년 산호세대학교의 도시공학 석사과정에 입학하며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인 1997년 IMF 경제위기가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다른 유학생들이 우르르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는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미국에 남기로 결정한 그는 반도체를 팔다가, 다음에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서버를 팔았고, 이어 시스코 네트워크 장비를 팔았다.
로저 버는 1997년 디앤자대학(De Anza College)에 입학했고 1998년 스탠포드대학교로 전학했지만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했다. 로저 버와 이흥직이 만난 건 이때였다. 이흥직의 사무실이 로저 버의 사무실 옆이어서 둘은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만났다. 두 사람의 사무실은 산호세의 파크 애비뉴 782번지에 있었다. 로저 버가 메모리딜러스를 설립하기 전 그는 우연히도 이흥직과 비슷한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정식으로 웹사이트를 만들고 나서 이흥직을 만나 메모리딜러스라는 사명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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