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연구 경쟁력이 세계 9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수나 인용 횟수 같은 주요 성과 지표에서 미국, 중국 등 주요국과 큰 격차를 보인 가운데, 특허 기술력 부문에서도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진단이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9월 16일 발표한 'AI 신약 개발 분야 기술경쟁력 및 정부 연구개발(R&D) 투자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AI 신약 관련 논문은 총 1,016편이다. 이는 미국(9,094건), 중국(7,469건), 인도(3,098건) 등 상위 국가들에 비해 크게 뒤처진 수치로, 한국은 일본(1,121건)보다도 낮은 9위에 머물렀다.
연구 결과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피인용 건수 측면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나타났다. 한국에서 해당 기간 중 인용된 논문 수는 2만2,544건으로, 미국(30만8,522건)의 약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중국(12만7,223건), 캐나다(10만7,737건), 독일, 영국 등이 한국보다 앞서는 국가로 꼽혔다. 다만, 논문의 영향력을 정량화한 지표인 상대인용률(RCR)에서는 한국이 2.20을 기록하며 세계 7위에 올랐다. 이는 연구의 질적인 기여도가 단순 건수보다는 높다는 점을 반영한다.
기술권리 확보에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 특허청에서 발행된 AI 신약 관련 특허 가운데, 한국은 단 한 건의 등록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은 평균 기술력이 높은 특허를 6건 보유 중이며, 영국(4건), 스위스(1건) 등도 선진권에 포함됐다. 이는 국내에서 연구는 진행되고 있으나, 이를 사업화하거나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승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임상시험과 실증 연구 부문에서도 우리나라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전임상(비인간 대상 실험) 관련 연구는 보고서에 따르면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AI를 실제 임상시험에 투입해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사례도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다. 2022년에는 관련 정부 예산이 451억 원이었고, 지난해에는 567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연평균 12.2%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의 ‘인공지능 활용 혁신 신약 발굴’ 사업과, 과기정통부 및 보건복지부가 함께 진행하는 ‘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AI 신약 개발 분야에서 세계 주요 국가들과 비교할 때 양적·질적 격차가 분명하다고 보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향후 정부 투자가 이어지면 개별 연구 성과의 질 향상과 더불어 산업화 및 글로벌 특허 확보 경쟁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