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인공지능(AI) 기본법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술 정책 싱크탱크가 규제 중심의 법 구성 방식이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 제도 전반에 대한 조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nformation Technology and Innovation Foundation, 이하 ITIF)은 지난 9월 29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AI 기본법이 전략 수립, 산업 진흥, 규제를 통합한 세계 첫 입법 사례이지만, 그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장점과 단점을 함께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규제 부문이 지나치게 개념적으로 포괄적이며 경직되어 있어 기업 활동의 유연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AI 산업 진흥 관련 조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데이터 인프라 구축, AI 집적단지 조성, 인재 양성, 국제화 전략 등은 글로벌 모범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진흥 노력과 병행되는 규제 조항들이 전체 법의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구체적으로는 포괄적인 AI 정의부터 중소기업 우선 적용 규칙, 행정적 보고 의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제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컴퓨팅 임계값 설정, 투명성 표시 의무, ‘고영향 AI’ 지정과 같은 규제가 실제 위험 관리보다는 절차적 복잡성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신생 기업이나 중소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ITIF는 여러 개선안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는 특정 컴퓨팅 기준 삭제, 과태료 도입 전 유예기간 설정, ‘고영향 AI’ 분류 기준을 실제 성과 기반 체계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부처별로 전문성에 맞춰 위험 규제 권한을 분산하고, AI 정의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개발(R&D) 정책 역시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고,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적용 가능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포함됐다.
이러한 지적은 현재 진행 중인 시행령 마련 과정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정부가 AI 기본법 시행과 함께 국내외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한다면, 규제의 실효성을 유지하면서도 기업 성장 여력을 확보하는 균형 잡힌 제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ITIF 역시 한국이 위험 기반의 성과 중심 규칙을 정교하게 설계할 경우,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