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BlackRock)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 규모를 1조5000억 달러(약 2036조원)로 제시하면서 퇴직연금과 401(k) 같은 장기 자본의 역할을 다시 거론했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가 금융시장 자금 배분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면서 사모시장 편입과 유동성 위험을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회장은 블랙록이 공개한 CNBC 인터뷰에서 AI 투자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칩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데이터센터와 전력 등에 1조5000억 달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경쟁의 비용이 반도체를 넘어 냉난방·공조, 전력망, 전력 공급으로 넓어졌다는 뜻이다. (blackrock.com)
핑크 회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사모시장 상품을 퇴직 포트폴리오에 일부 넣을 경우 유동성이 낮아지는 위험을 측정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장기 자본을 인프라에 연결하자는 논리와 동시에, 퇴직자산이 단기 환매가 어려운 자산에 묶일 수 있다는 문제를 인정한 셈이다.
논점은 AI 인프라에 돈이 필요한지보다 그 돈을 어떤 구조로 끌어오느냐다. 블랙록은 2026년 회장 서한에서 운용자산 14조 달러(약 1경8998조원)의 절반 이상이 은퇴 관련 자산과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같은 서한은 블랙록이 은퇴저축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오래 주장해 왔다고 적었다. (blackrock.com)
블랙록은 이미 AI 인프라 투자 기반을 넓히고 있다. 블랙록과 글로벌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Global Infrastructure Partners·GIP), 마이크로소프트($MSFT), MGX는 2025년 3월 19일 AI 인프라 파트너십(AIP)에 엔비디아($NVDA)와 xAI가 합류했다고 밝혔다. AIP는 투자자와 자산 보유자, 기업으로부터 초기 300억 달러(약 40조7100억원)의 자본을 모으고, 부채 조달을 포함해 최대 1000억 달러(약 135조7000억원)의 투자 여력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ir.blackrock.com)
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커졌다. 블랙록의 AI 투자 해설은 향후 5년간 데이터센터 지출이 10조 달러(약 1경3570조원)를 넘을 수 있다고 봤다. 1기가와트(GW)당 400억 달러를 가정하면 10조 달러는 약 250GW에 해당한다는 계산이다. (blackrock.com)
이 수치는 앞선 논의보다 한층 커진 규모다. 본지도 앞서 [AI 운영에 70GW 이상의 전력 용량과 약 500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핑크 회장의 견해를 전했다](https://www.tokenpost.kr/news/cryptocurrency/388477). 당시 쟁점이 전력 용량과 초기 구축 비용이었다면, 이번 논의는 장기 자본과 퇴직자산의 편입 구조로 옮겨갔다.
AIP는 AI 데이터센터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전력·에너지 인프라를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통상 인프라 투자는 회수 기간이 길고 현금흐름을 장기간에 걸쳐 확보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보험사, 연기금, 퇴직연금 같은 장기 자금이 주요 투자자로 거론돼 왔다.
다만 퇴직자산은 일반 투자자 노후소득과 직접 연결된다. 공모 주식·채권보다 거래가 덜 잦은 사모자산을 넣을 경우 수익 기회와 함께 평가, 수수료, 환매 제한, 수탁자 책임 문제가 따라붙는다. 핑크 회장이 유동성 위험을 함께 언급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블랙록의 2026년 퇴직연금 조사는 응답자의 68%가 은퇴 준비가 궤도에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예상 적립금은 기대 은퇴소득의 50~60% 수준을 뒷받침하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봤다. 또 플랜 스폰서의 45%는 사모시장 익스포저 추가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blackrock.com)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인프라 투자 확대를 장기 수익 기회로 보는 쪽은 은퇴자산이 데이터센터, 전력망, 사모채권 같은 장기 자산과 맞는다고 본다. 반대편에서는 개인 노후자금이 복잡하고 유동성이 낮은 상품에 노출될 때 투자자가 비용과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핑크 회장의 발언을 개인 예금 강제 동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장에 가깝다. 야후 파이낸스(Yahoo Finance)는 2026년 5월 팩트체크에서 핑크 회장이 장기 투자 계좌와 연금 계좌를 언급했지만, 이는 자금 출처에 대한 예측이지 압수나 지시를 뜻한 것은 아니라고 정리했다. (finance.yahoo.com)
블랙록은 AI 인프라 병목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회사는 전력, 송전망, 원자재, 칩 공급망, 냉각 기술을 주요 제약 요인으로 꼽았다. 데이터센터가 늘수록 반도체 조달뿐 아니라 전력망 접속, 냉각 설비, 지역사회 수용성까지 투자 판단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국내 시장에서도 퇴직연금 자산관리와 AI 활용 논의는 이미 진행 중이다. 본지는 앞서 [신한투자증권이 퇴직연금 계좌에서 AI가 상장지수펀드 배분과 재조정을 맡는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전했다](https://www.tokenpost.kr/news/market/400895). 미국식 401(k)와 국내 퇴직연금 제도는 다르지만, 장기 노후자산을 어떤 상품에 배분할지라는 문제는 공통된 쟁점이다.
크립토 시장과의 접점은 유동성이다. 블랙록은 CNBC 인터뷰에서 토큰화, 디지털자산 플랫폼, 사모시장, 투자기술을 함께 언급했다. AI 인프라가 장기 자본을 흡수하는 흐름은 비트코인(BTC) 같은 디지털자산의 가격 방향을 곧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금이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사모시장으로 이동할 때 위험자산 전반의 유동성 구조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