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업에서 "배분 전략(allocation strategy)"은 오랫동안 회사의 가장 깊은 금고에 보관되는 영업비밀이었다. 어떤 자산에, 언제, 얼마를 싣고 빼는지를 결정하는 규칙 — 그 규칙이 곧 운용사의 경쟁력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한 블록체인 기반 자산관리 플랫폼이 그 금고 문을 스스로 열어젖혔다. 디지털 연금 플랫폼 모찌(Mochi)가 베타 출시와 동시에 자사 자산운용 알고리즘의 설계 전반을 공개한 것이다.
공개된 문서를 들여다본 첫인상은 한 마디로 "예상보다 정교하다"였다. 흔히 코인 업계의 '고수익 상품'에서 기대하기 쉬운 막연한 약속 대신, 이 문서에는 채택한 전략의 학술적 계보, 5,000회에 달하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결과, 그리고 4개 거시경제 국면별 스트레스 테스트가 담겨 있었다. 본지는 모찌가 공개한 운용 알고리즘이 실제로 "기관급 전략에 견줄 만한가"라는 질문을, 마케팅 수사가 아닌 데이터로 따져봤다.
- 모찌는 무엇을, 왜 공개했나
모찌는 스테이블코인(USDT·USDC 등)을 예치하면 이를 금·미국 국채·우량주식 등 실물자산 토큰(RWA)에 분산 투자해주는 플랫폼이다. 미국의 401(k) 퇴직연금이 가진 '장기 분산·복리 축적'의 논리를, 국가 연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블록체인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 핵심 구상이다.
이번 베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서비스 출시 자체가 아니라, 그와 함께 내놓은 운용 알고리즘 백서다. 대부분의 운용사가 "우리는 잘 굴립니다"라는 결과만 보여줄 뿐 그 방법론은 감추는 데 반해, 모찌는 ▲어떤 전략을 채택했고 ▲왜 그 전략이 유리한지 ▲어떤 가정과 검증을 거쳤는지를 통째로 문서화해 공개했다. 운용업의 관행을 생각하면 분명 파격이다.
물론 의도는 명확하다. 블록체인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늘 핵심 과제인 만큼, "감출 게 없다"는 태도 자체를 신뢰의 근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공개된 내용물은 그 자신감을 뒷받침할 만한 수준인가.
- 채택한 전략의 계보 — '올웨더(All Weather)'의 재해석
모찌가 운용 엔진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Bridgewater)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가 정립한 올웨더(All Weather) 전략이다. 올웨더의 핵심 발상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모든 자산 가격은 결국 두 가지 변수 — 경제 성장(↑↓)과 물가(↑↓) — 의 조합으로 설명되며,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4개의 경기 국면(이상적 성장, 인플레이션 호황, 디플레이션·침체, 스태그플레이션) 각각에 동일한 위험을 배분(risk parity)해두면, 어떤 날씨가 오더라도 포트폴리오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찌는 이 검증된 프레임워크를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대신 사용자의 성향에 맞춘 3개의 포트폴리오 '슬리브(sleeve)' — 안정형(Stable)·중립형(Neutral)·공격형(Aggressive) — 로 재구성했다. 특히 중립형을 핵심 상품으로 두면서, 원조 올웨더가 갖는 약점을 정밀하게 보완한 점이 인상적이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이 바로 이 '보완'이다. 원조 올웨더는 장기 국채 비중이 40%에 달해, 물가가 오르고 성장이 멈추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손실(-2.9%)을 본다. 모찌는 중립형에 투자등급 회사채와 단기 현금성 자산을 더해 이 구간의 손실을 메웠다. "유명한 전략을 가져왔다"가 아니라 "그 전략의 알려진 약점을 어디서 보완했는지"까지 보여준 셈이다.
- 핵심 검증 — 기관급 전략과 견줘본 결과
그렇다면 성과는 어떤가. 모찌가 공개한 시뮬레이션은 초기 1만 달러를 20년간 운용한다고 가정하고, 5,000개의 무작위 경로를 생성해 평균을 낸 것이다. 비교 대상에는 원조 올웨더는 물론, 기관과 개인이 표준으로 삼는 60/40 포트폴리오, 그리고 미국 대표지수인 S&P 500이 함께 올랐다.

숫자를 정직하게 읽어야 한다. 단순 수익률만 보면 S&P 500(9.73%)이나 60/40(8.20%)이 모찌 중립형(6.25%)보다 높다. 모찌가 "수익률 1등"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운용의 세계에서 진짜 실력은 '얼마나 벌었나'가 아니라 '위험 한 단위당 얼마나 벌었나', 즉 샤프지수(Sharpe Ratio)로 평가된다. 이 잣대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모찌 중립형의 샤프지수는 0.578로, 운용업의 '교과서'인 원조 올웨더(0.582)와 사실상 동률이다. 동시에 변동성(6.48%)과 최대낙폭(-11.68%)은 올웨더보다도 낮다. 즉 모찌 중립형은 기관급 전략과 같은 효율로, 더 적은 출렁임으로 자산을 굴린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S&P 500의 샤프지수가 0.454로 가장 낮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이 벌지만 가장 비효율적으로 번다는 뜻이며, 최대낙폭이 -32.65%에 달해 한 번의 폭락이 투자자를 시장에서 이탈시킬 위험이 가장 크다. "몰빵의 함정"을 데이터가 그대로 보여준다.
- 진짜 차별점은 '국면 일관성'에 있다
모찌 알고리즘의 우수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단일 수익률 표가 아니라 4개 거시 국면별 스트레스 테스트다. '올웨더(전천후)'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경기가 어떤 국면에 있든 성과가 들쭉날쭉하지 않아야 한다.
공개 문서에 따르면, 4개 국면에 걸친 5년 수익률의 표준편차(낮을수록 일관적)는 다음과 같았다. 모찌 안정형이 1.13으로 가장 일관적이었고, 모찌 중립형이 3.45, 원조 올웨더가 4.55, 60/40이 7.31, S&P 500이 무려 11.41로 가장 변덕스러웠다. 모찌 중립형의 국면 변동성은 S&P 500의 약 30%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주목할 결과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다. 원조 올웨더가 -2.9%, 60/40이 -5.0%, S&P 500이 큰 폭의 손실을 기록하는 이 까다로운 구간에서, 모찌 안정형은 +2.37%로 플러스 수익을 지켜냈다. 4개 국면 어디에서도 손실을 보지 않은 유일한 포트폴리오다. 노후 대비처럼 '잃지 않는 것'이 최우선인 사용자에게 이 결과가 주는 함의는 작지 않다.
행동경제학적으로도 이 지점은 중요하다. 연금·저축형 상품의 사용자는 통상 -30% 낙폭에서 대거 이탈하지만, -15% 이내의 손실은 견뎌내는 경향이 있다. 모찌의 모든 슬리브가 시뮬레이션상 이 '이탈 위험선'을 넘지 않도록 설계됐다는 점은, 장기 운용 플랫폼으로서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 블록체인이 더하는 것 — '믿어달라'에서 '확인해보라'로
전통 운용사의 성과 보고서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하나 있다. 투자자는 운용사가 제시한 숫자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산이 실제로 그 비중대로 보유되고 있는지, 보고서가 정직한지를 개인이 검증할 방법은 없다.
모찌의 구조는 이 비대칭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모든 자산이 퍼블릭 블록체인 위의 RWA 토큰으로 보유되고, 매수·리밸런싱·인출 등 모든 운용 행위가 온체인 거래로 기록된다. 사용자는 자신의 자산이 실제로 블랙록의 토큰화 국채(BUIDL)나 팍소스 골드(PAXG) 같은 검증된 실물자산 토큰으로 보유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믿어달라(trust me)'가 아니라 '확인해보라(verify it)'로의 전환이다.
여기에 이번 알고리즘 공개가 결합되면 신뢰의 층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간다. 무엇을 할지(알고리즘)는 사전에 공개되어 있고, 실제로 그대로 했는지(실행)는 체인에서 사후 검증된다. 운용 규칙과 실행 결과가 모두 외부에 열려 있는 구조는, 기존 금융에서는 사실상 구현하기 어려운 형태의 투명성이다.
특히 모찌가 공개한 위험 한도 정책 — 단일 자산 최대 60%, 단일 발행사 최대 40%, 일일 인출 한도(TVL의 5%), 단일 자산 -20% 급락 시 서킷브레이커 발동 등 — 이 스마트 컨트랙트에 코드로 박혀 있어 운용사가 임의로 어길 수 없다는 점은, '약속'을 '강제'로 바꾸는 블록체인의 특성을 잘 활용한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 전망 — 운용업의 '오픈소스 모먼트'가 열린다
이번 공개가 갖는 상징성은 가볍지 않다. 자산운용의 핵심 로직을 영업비밀로 묶어두던 업계 관행에 균열을 내고, "전략은 공개하되 실행을 검증 가능하게 만든다"는 새로운 신뢰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검증된 기관급 프레임워크를 가져와 그 약점을 보완하고, 그 과정을 데이터로 입증한 뒤,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운용한다 — 이 세 박자가 모두 갖춰진 시도는 흔치 않다.
모찌가 내건 목표 — 서비스 5년 내 운용자산 47.5억 달러, 글로벌 시장의 1% 점유 — 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이번 베타와 함께 공개된 알고리즘은 그 목표가 막연한 구호가 아님을 데이터로 뒷받침한다. "블록체인 = 투기"라는 통념을 넘어, 온체인 자산운용도 기관급 규율과 투명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음을 실증해 보였기 때문이다. 견고한 설계도와 그것을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구조가 만났을 때, 신뢰는 더 이상 마케팅의 영역이 아니라 코드의 영역이 된다.
운용의 투명성과 기관급 규율을 한 손에 쥔 플랫폼이 전 세계 연금 사각지대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모찌의 베타는 단순한 서비스 출시가 아니라, 자산운용업이 '공개와 검증'의 시대로 진입하는 신호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출발선에서 보여준 데이터는, 분명 더 큰 기대를 걸어도 좋다는 확신을 준다.
※ 본 기사는 모찌가 공개한 자산운용 보고서 및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근거로 작성됐다. 기재된 수익률·낙폭 등은 과거 데이터 기반의 시뮬레이션 결과로 미래 성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니다. 투자 결정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