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발행사들이 미국 국채 시장에서 주요 국가들을 제치고 '큰손'으로 떠올랐다.
7일(현지시간) 비주얼 캐피털리스트가 공개한 '미국 부채의 주요 매수자'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지난 1년(2024년 6월~2025년 6월)간 국가 단위의 매수자들을 따돌리고 매입 규모 7위를 기록했다.
◇ "싱가포르·노르웨이도 제쳤다"... 1년간 410억 달러 순매수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미 국채를 가장 많이 사들인 곳은 헤지펀드와 금융 기관이 밀집한 케이맨 제도(1,160억 달러)였다. 그 뒤를 벨기에(1,150억 달러), 영국(1,120억 달러), 프랑스(700억 달러) 등이 이었다.
주목할 점은 테더(Tether)와 서클(Circle)로 대표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약진이다. 이들은 지난 1년간 약 410억 달러(약 58조 원) 규모의 미 국채를 순매수했다.
이는 전통적인 금융 강국이나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국가들의 매입 규모를 넘어서는 수치다. 같은 기간 아시아의 금융 허브인 싱가포르(390억 달러)와 북유럽의 부국 노르웨이(380억 달러), 심지어 이스라엘(320억 달러)보다도 더 많은 미 국채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 1:1 페깅의 역설? ... "코인 찍어내려면 미국 빚 사야 해"
암호화폐 기업들이 이처럼 미 국채를 공격적으로 사들이는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테더(USDT)나 USDC 같은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된 코인 1개당 1달러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100% 이상의 지급준비금을 보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행사들은 현금과 가장 유사하면서도 이자 수익을 낼 수 있는 '초안전 자산'인 미국 단기 국채(T-bills)를 선호하게 된다.
결국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하고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미 재무부는 국채를 사줄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암호화폐와 달러 패권이 서로를 지탱하는 '기묘한 공생(Symbiosis)' 관계가 형성됐다"고 평가한다.
◇ 韓 투자자 주목... "크립토, 이제 제도권 금융의 '버팀목'"
이번 데이터는 암호화폐가 더 이상 '대안 금융'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 실물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축으로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친(親)크립토 정책 기조가 강화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미 국채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미 국채 보유량을 조절하는 사이, '디지털 달러' 진영이 그 빈자리를 메우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의 주요 매수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함부로 암호화폐 산업을 규제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라며 "향후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이 통과되면 기관 자금 유입이 가속화되어 매수세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