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와 '굴욕적 합의'…한국 원전 수출 길 막히나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서의 상세 내용이 드러나면서, 8월 19일 주식 시장에서 원전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올 1월 체결된 ‘글로벌 합의문’에 공개되지 않았던 제한 조건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특히 한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는 점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수년간 원전 분야 핵심 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미국 기업으로, 이와 같은 조건은 한국 원전 기술의 독립성과 수출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합의문에는 경제적 조건도 함께 포함됐다.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경우, 1기당 약 6억5천만 달러(한화 약 9천억 원) 규모의 물품 및 용역을 웨스팅하우스에서 구매해야 하며, 기술 사용료도 1기당 약 1억7천5백만 달러(한화 약 2천4백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과도한 지급 조건을 감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내 기업의 수익성과 자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주식 시장에서는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이날 오전 11시 43분 기준, 두산에너빌리티는 전일 대비 4.92% 하락한 6만1천9백 원을 기록했다. 한국전력(-3.55%), 한전기술(-6.92%), 한전KPS(-7.69%) 등도 동반 하락했다. 원전 기자재 관련 업체인 한신기계와 우리기술 역시 각각 5% 이상 주가가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배경을 살펴보면, 이번 합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진 지식재산권 분쟁을 매듭짓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한국의 독자적 입지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중심의 원자력 공급 체계를 감안하면 일정 부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에너지 안보와 방산 기술이 결합돼 있는 원전 산업 특성상, 미국의 기술적 동의를 구하는 구조가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한국 원전 산업의 수출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전 기술의 자립을 위한 중장기 전략과 미국 등 기존 원전 강국과의 협의를 병행하지 않는다면, 이번 합의를 계기로 원전 국산화 및 독립 수출 전략 추진에 상당한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