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 업계의 실적이 급등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납부한 법인세 총액이 6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전년 대비 9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기업 실적 회복세가 세수 증가로 빠르게 이어지고 있는 대표 사례가 됐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1월부터 9월 말까지 납부한 법인세는 총 6조2천310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이들의 법인세 납부액은 7천10억 원이었는데, 단숨에 5조5천300억 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천70억 원 수준이었던 법인세가 올 들어 1조8천860억 원으로 211% 증가했고, SK하이닉스는 940억 원에서 무려 4조3천440억 원으로 4천516% 상승했다.

이러한 급증의 배경에는 반도체 업계가 다시 수요 반등세를 타며 ‘메모리 슈퍼사이클’ 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이 크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활성화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두 회사 모두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올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각각 12조1천661억 원, 11조3천834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 두 회사의 이익 증가분은 전체 대기업 영업이익 증가분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업계에선 이 같은 실적 호조가 반영돼 내년도 정부의 법인세 수입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발표한 2025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반도체 수출 증가가 이듬해 세수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법인세는 기업의 당기순이익을 바탕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수백%씩 늘어난 이익은 곧 정부 세입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속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세계 각국은 이미 AI 전환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뛰어든 상태다. 가령,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는 미국에 223조원을 투자해 공장을 설정 중이며, 미국과 일본, 유럽 주요국들도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오픈AI가 주도하는 글로벌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는 총 450조원 투자 규모로 움직이고 있으며, 국내 대기업들도 이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 원칙) 규제의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가 책임지기 어려운 대규모 투자에는 유연한 제도 설계도 가능하다"고 밝혔고, 재계는 이를 반영한 투자 활성화 방안 마련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금산분리 자체를 완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산업 환경에 부합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속적인 AI 투자 확대와 기술 경쟁의 본격화 속에서, 반도체 산업은 향후에도 국내 세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세수 증대 효과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각국의 공격적인 산업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국내 투자 전략과 정책 유연성이 함께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