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이 한국을 산업 정책에서 표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특히 전후 빈곤국에서 첨단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표준’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는 세계은행이 2025년 세계개발보고서 ‘개발을 위한 표준’을 12월 11일 발표하면서, 한국 사례를 주요 사례로 소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표준을 단순히 기술 규격이 아닌, 경제 성장과 수출 경쟁력, 기술 확산을 뒷받침하는 국가 인프라로 규정하며, 개발도상국들도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산업 재건이 시급했던 1960년대에 '한국산업표준'(KS) 인증제를 도입하고, 국제표준화기구(ISO)에 가입하면서 표준 정책을 본격화했다. 이후 1970년대에는 10개년 산업표준화 계획을 수립, 표준을 산업 성장의 토대로 삼았다. 1980년 개헌을 통해 국가가 표준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헌법에 명시할 정도로 정책적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러한 표준 강화는 산업 구조 개편과도 맞물렸다. 한국이 수출 중심, 중화학 공업 중심 경제로 가속화하던 시기에, 제품 품질을 높이고 수출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기반으로 활용됐다. 특히 미국과 독일의 지원 아래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의 역량을 확충, 품질 인프라에 과학적 기반을 더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민간이 표준 개발에 참여하도록 권한을 넘겨주면서 산업현장의 실질적 수요와 밀착된 표준 체계를 구축했다. 이와 동시에 ISO나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표준화 국제기구 활동도 확대하면서, 단지 외국 기준을 따르는 수준에서 벗어나 국제 표준 자체를 선도하는 단계로 이행하게 됐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통신(5세대 이동통신 등), 미래차 등 한국이 기술 주도권을 가진 신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는 표준이 더 이상 과거의 제조업 중심 개념에 머물지 않고, 미래 기술 패권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 상황에 맞춰 국제표준을 도입하고, 국내 표준 역량을 강화한 뒤 국제 표준화 논의에 참여하는 이른바 '3A 전략(적응 Adapt, 정렬 Align, 주도 Author)'을 통해 한국의 경험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기술혁신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가운데, 표준을 선점하는 국가가 글로벌 시장의 규칙을 설계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전략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