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 규제와 제도 정비가 한국 금융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10일 서울 강남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온체인 심포지엄에서 ‘규제 및 기관 환경’을 주제로 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토론에는 좌장을 맡은 이효진 고려대 겸임교수·블록체인산업협의체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패트릭 윤 크립토닷컴 한국 총괄,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주성훈 코드(CodeVasp) 최고기술책임자가 자리했다.
이효진 교수는 글로벌 규제 정비 현황을 먼저 언급했다. 그는 "유럽의 미카(MiCA), 미국의 제네시스 법,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이 이미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규제 정비가 각국 산업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국내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새 정부가 디지털 자산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여러 관련 입법이 마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된 규제라는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트릭 윤 크립토닷컴 한국 총괄은 한국 시장의 위상부터 짚었다. 그는 "원화 거래량은 달러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며 "시장 규모와 성장성을 고려하면 글로벌 블록체인 기업들이 한국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앱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각국 규제를 맞춰야 하고 특히 한국은 현지화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규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미국의 규제가 국제 표준을 세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이 이에 발맞춰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거래소뿐 아니라 수탁, 리스크 관리 서비스 회사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기업들이 웹3로 전환한다면 더욱 풍부한 생태계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특히 결제와 송금에서 많은 기회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의 경우 이미 95%가 전산으로 거래되고 있다"며 "사용자가 부담하는 숨겨진 송금 수수료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경제적으로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는 먼저 국내 가상자산 규제의 흐름을 짚었다. 그는 "FATF 권고를 계기로 규제가 마련되기 시작했고, 특금법에 가상자산사업자 관련 법안이 도입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자 보호 부재에 대한 인식으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며 규제 체계가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다양한 사업 형태에 대한 규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며 새 정부 출범 이후 디지털자산기본법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가상자산 규제와 관련해 여전히 모호한 측면이 있고 2024년까지 사실상 법인의 참여가 불가능했다"며 "2024년까지 전체 거래의 99%가 리테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거래소 중심의 매도 거래만 허용됐으나 하반기에는 매수 거래도 일반 법인으로 확장될 예정이라며 "다만 전면 허용 시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해외 관점에서 법인 참여가 제한되는 점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부연했다.
토큰증권 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이슈는 2023년 2월 투자계약증권 분류 체계가 마련되며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토큰증권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고, 금융당국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해도 RWA보다 범위가 더 좁은 상태에서 거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채와 MMF는 가장 토큰화가 활발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허용되지 않아 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의구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에서는 토큰증권 발행 시 퍼블릭 체인을 쓸 수 없도록 규정돼 있지만 해외에서는 다양한 레이어1 퍼블릭 체인을 활용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프라이빗 체인을 써야 해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와 관련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아직 법제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행 주체, 준비 자산, 감독기구를 중심으로 제도가 논의되고 있으며 은행과 핀테크 등 다양한 주체가 발행 주체로 검토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안정적이고 비즈니스 친화적이며 글로벌 차원에서 활용 가능한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이용자 보호를 강조해온 국내 규제가 가상자산의 경우 일본의 보수적 접근을 따르는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단순 투자 수단이나 소수 커뮤니티의 자산이 아닌 메인스트림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이용자 보호도 진정한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크라우드펀딩, P2P 산업은 규제가 만들어진 뒤 오히려 축소돼 이용자가 사라진 사례가 있다"며 "암호화폐 산업 역시 사후 규제로만 접근할 경우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그는 "글로벌 수요 총량은 변함이 없는 만큼 국내 산업이 위축되면 자본은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며 "산업을 성장시키지 않으면 국부 유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해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성훈 코드(CodeVasp) 최고기술책임자는 먼저 규제와 혁신의 관계를 언급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규제와 혁신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규제가 산업 성장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22년에 제정된 트래블룰 가이드라인이 국내에 적용되면서 한국이 세계 최초로 이를 강제 시행한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트래블룰의 성격에 대해 설명했다. 주 CTO는 "블록체인의 본질은 국경이 없고 누구나 자유롭게 자산을 보유하고 전송할 수 있다는 데 있지만, 이용자 보호 관점에서 본다면 트래블룰은 기존 금융에서 이미 적용돼 온 제도를 블록체인에 접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취인, 주소, 금융기관 정보 등은 기존 금융에서도 요구되는 사항이기에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옮겨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주 CTO는 "트래블룰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논의해 표준 규격을 만들고 있는 사안"이라며 "이미 대부분 사업자들이 동일한 표준을 따르고 있어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메일 서비스가 달라도 같은 프로토콜로 송수신되듯 트래블룰도 메인넷 간 자산 이동까지 적용되는 보편적 규칙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국내에서 시작된 트래블룰 이행 경험은 글로벌 차원의 논의와도 연결돼 있다"며 "이제는 단순히 제도를 구축하는 단계를 넘어, 기술적·제도적으로 더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온체인 심포지엄은 웹3 핵심 의제인 ‘온체인 금융의 미래’를 B2B 관점에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블록체인 미디어 ‘토큰포스트‘가 주최하고 코인리더스, 테더, 크립토닷컴이 공동 주관했다.
전통 금융권과 블록체인 기업이 함께 온체인 금융 전략을 공유하는 자리이자 스테이블코인, RWA 등 새로운 온체인 인프라가 제도권 금융에 편입되는 구체적인 경로를 제시하는 무대이다. 온체인 기술의 잠재력과 파급력을 확인하고 온체인 자산이 미래 금융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게 될지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행사 참석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