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암호자산 시장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최근 보고서 「The Rise of Stablecoins and Implications for Treasury Markets」는 이들이 이미 미국 국채 시장의 ‘비공식 투자자’로 부상했으며, 향후 글로벌 금융 안정성의 핵심 변수가 될 것임을 경고한다.
■ “스테이블코인 = 단기국채의 디지털 래퍼 (Wrapper)”
보고서에 따르면, 테더(USDT)와 서클(USDC) 두 프로젝트가 보유한 미국 단기국채 규모는 2025년 2분기 기준 1,776억 달러, 전체 미 국채 발행잔액의 0.6%에 달한다. 이 수치는 벨기에, 캐나다, 아일랜드 등 주요 해외 보유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즉, “테더와 서클은 국가 단위의 채권 보유자”로 변모했다.

특히 테더의 국채 보유액은 2024년 말 기준 945억 달러로, 독일·UAE 등 중견국 수준이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단기 미채권 수요의 구조적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미국 재정조달의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암호화폐 시장의 불안정성이 국채금리로 전이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는 점에서 양면적이다.
■ 왜 이렇게 빨리 성장했나 — ‘GENIUS Act’와 달러 디지털화 가속
2024년 미 의회가 통과시킨 ‘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GENIUS) Act’는 제도적 전환점이었다. 해당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용 디지털 자산’으로 규정하며, 발행 주체를 은행·신용조합·비은행 금융사까지 확대했다. 또한 100% 준비금 보유 의무와 AML(자금세탁방지)·제재 준수 규정을 부과했다.
이로써 미국 내 규제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송금·결제 시장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송금 거래의 43%가 이미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통화가치가 불안정한 신흥국일수록 채택률이 높다.

■ 글로벌 자금흐름의 재편 — “국경 없는 달러”
데이터 분석 결과, 스테이블코인 흐름은 북미·아시아 간 양방향 송금에서 집중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필리핀, 터키 등 고인플레이션 국가에서는 법정화폐 대신 USDT를 가치저장 수단으로 사용하는 현상이 보편화됐다. 이는 전통적 외환관리와 통화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며, 신흥국 통화대체(dollarization)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한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은행을 대체하는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글로벌 달러순환의 구조가 점차 블록체인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 2030년 시나리오 — “2조 달러 규모의 디지털 국채 수요”
보고서는 2030년까지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했다. 미 달러 유통량이 연 6% 증가하고 스테이블코인 침투율이 10%에 도달할 경우, 스테이블코인 관련 국채 수요는 약 2조 달러로 급증한다. 이는 현재 외국 중앙은행 보유액의 약 4분의 1 수준이며, 미국 정부의 단기 부채조달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규모다.

■ 정책 리스크 — “민간 디지털달러가 흔드는 통화주권”
하지만 보고서는 동시에 세 가지 위험요소를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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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금리 전이 리스크: 스테이블코인 매도세가 몰릴 경우 단기국채 금리가 2~3배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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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리스크: 테라루나 사태처럼 대규모 ‘디페깅(가치연동 붕괴)’이 발생하면, 국채·머니마켓펀드·레포시장에 연쇄 충격이 전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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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대체와 세수 유출: 신흥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실상 준통화로 채택할 경우, 자국 통화정책과 세수기반이 훼손된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재정조달의 새로운 동력인 동시에 ‘민간형 달러화’라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 브루킹스의 제언 — “감시·투명성·국제 공조”
보고서는 다음 세 가지를 정책 핵심축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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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 강화: 준비자산 구성, 만기구조, 보유기관 공개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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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적 리스크 관리: 스트레스테스트·디페깅 대응 매뉴얼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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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협력: FATF 및 IMF 주도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
특히 IMF와 BIS(국제결제은행)는 각국이 스테이블코인 자금 흐름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새로운 국채 수요자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암호자산의 변두리 실험이 아니다.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미국 국채의 디지털 트릴리언 달러 펀드”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통화주권이 민간 블록체인에 잠식되는 속도는 정책당국의 대응보다 빠르다.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누가 달러를 발행하고, 누가 그것을 통제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