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발표한 '2026 글로벌 전망(2026 Global Outlook)'은 단순한 시장 예측이 아니다. 이것은 기술 산업, 더 나아가 금융 시스템 전체가 '소프트웨어의 시대'에서 '하드웨어와 자본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알리는 구조적 신호다.
블랙록은 이번 보고서에서 우리가 경량화된 소프트웨어가 성장을 주도하던 시기를 지나, 에너지, 부채, 규제, 그리고 통제(Control)라는 물리적 제약이 지배하는 자본 집약적 시스템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번 전망은 기관들이 바라보는 Web3와 DeFi(탈중앙화 금융)의 미래와 놀랍도록 맞닿아 있다. 블랙록이 제시한 핵심 테마를 통해, 다가올 2026년이 암호화폐와 금융 인프라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를 분석했다.
1. 마이크로가 곧 매크로다 (Micro is Macro): '중립'은 없다
블랙록은 첫 번째 테마로 "마이크로는 매크로다(Micro is macro)"를 꼽았다. 과거에는 거시 경제가 개별 기업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는 소수의 거대 기업(AI 빌더)들의 자본 지출(Capex) 규모가 너무나 거대해져서, 그들의 결정이 곧 거시 경제 지표를 움직이는 세상이 되었다.
투자 함의: 더 이상 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중립적(Neutral)' 포지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덱스 투자조차도 사실상 특정 거대 기술 기업들에 대한 집중 투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Web3 연결점: 이는 블록체인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메인넷, 소수의 디앱(dApp)이 전체 유동성과 트랜잭션을 장악하는 구조적 쏠림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아키텍처를 선택하는 것이 곧 거시적인 투자 결정이 되는 시점이다.
2. 분산 투자의 환상 (The Diversification Mirage)
블랙록은 "분산 투자의 환상(Diversification mirage)"이라는 도발적인 화두를 던진다. 투자자들은 다양한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위험을 분산시켰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AI와 같은 단일 테마가 모든 자산군의 수익률을 동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 "분산이라고 믿었던 배분은 사실상 거대한 액티브 베팅(Big active bets)일 수 있다"는 경고다.
Web3 시사점: 단순히 여러 토큰을 보유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가 아니다. 진정한 리스크 관리는 '노출(Exposure)'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깨졌을 때의 시나리오를 통제할 수 있는 '책임(Responsibility)'과 '통제권(Control)'을 확보하는 데 있다.
3. 인프라가 내러티브를 이긴다: 칩(Chip)이 아니라 전력(Power)이다
AI 열풍 속에서 대중은 엔비디아의 GPU 칩에 열광하지만, 블랙록은 그 뒤단에 있는 '물리적 병목(Physical Constraints)'에 주목한다.
전력난: AI 데이터센터는 2030년까지 미국 전체 전력 수요의 최대 25%를 차지할 수 있다.
병목 현상: 진짜 제약 요인은 칩이나 코드가 아니다. 토지, 에너지, 인허가, 그리고 송전망이다. 블랙록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Alastair Bishop은 "기업들은 칩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토지와 에너지가 진짜 제약이다"라고 단언한다.
4. 부채는 선택이 아닌 필수 (Leverage is Unavoidable)
이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선투자(Front-loaded investment)가 필요하다. 수익은 나중에 발생(Back-loaded)하므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레버리지(부채) 활용은 불가피하다.
사모 대출(Private Credit)의 부상: 은행과 공공 부문이 감당할 수 없는 이 자금 수요를 메우기 위해 사모 대출 시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Web3 시사점: DeFi 시장 역시 단순한 토큰 투기를 넘어, 실물 자산(RWA)과 연계된 대출 프로토콜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준다. 시스템은 스트레스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유동성 공급처(Lender)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5. 스테이블코인: 더 이상 '틈새'가 아니다 (Stablecoins are no longer niche)
블랙록은 이번 리포트에서 '금융의 미래(Future of finance)' 섹션을 할애해 스테이블코인을 집중 조명했다.
인프라로서의 스테이블코인: 블랙록의 시장 개발 글로벌 헤드인 Samara Cohen은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틈새시장이 아니며, 전통 금융과 디지털 유동성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고 명시했다.
제도권 진입: 보고서는 2025년 'Genius Act' 등을 언급하며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및 송금 시스템의 구조적인 부분이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트레이딩 칩이 아니라, **금융의 새로운 결제 레일(Settlement Rails)**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노출(Exposure)을 쫓을 것인가, 통제(Control)를 설계할 것인가?
블랙록의 2026년 전망은 Web3 업계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의 시장이 '누가 더 빨리 내러티브에 올라타느냐(Exposure)'의 싸움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시스템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누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Control)'의 싸움이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한계: 코드는 가볍지만, 그것을 돌리는 에너지는 무겁다.
분산의 종말: 무작위적인 분산 투자는 더 이상 안전판이 되지 못한다.
인프라의 본질: 칩보다 전력이 중요하듯, 토큰보다 결제 레일(Settlement)과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해진다.
Web3가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진정한 금융 인프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블랙록이 지적한 것처럼 '책임의 소재'와 '리스크 통제'가 사전에 설계되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단순히 시장에 노출되기 위해 투자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스템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2026년 포트폴리오의 승패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