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방향을 틀었다. 2017년 이후 철문처럼 닫혀 있던 가상자산공개(ICO) 규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토큰증권(STO) 법제화 재추진과 법인 실명계좌 허용 검토가 동시에 거론되면서, 시장은 기대와 경계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책의 전환은 언제나 질문을 동반한다. 왜 지금인가. 그리고 제대로 준비된 변화인가.
당국의 판단 배경은 짐작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친(親) 가상자산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일본과 싱가포르는 이미 제도권 편입을 넘어 산업 육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만 ‘투기’라는 단어에 발목 잡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처 확대, 국내 기업의 합법적 ICO 허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토큰은 이제 변방의 실험이 아니라 주식·채권을 보완하는 새로운 자본 조달 수단이다. 기업에 선택지를 넓혀주고 자본시장의 효율을 높이는 일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산업 정책의 영역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우리에게는 뼈아픈 전례가 있다.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과 크라우드펀딩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혁신’을 말했지만 실제 정책은 ‘통제’에 가까웠다. 투자자 보호를 앞세운 과도한 한도 규제와 복잡한 등록 요건은 시장의 숨통을 끊었다. 그 결과, P2P 산업은 급속히 위축됐고 크라우드펀딩은 이름만 남았다. 혁신을 키우겠다며 싹부터 잘라낸 셈이다.
STO와 법인 가상자산 투자 허용이 같은 길을 따라가선 안 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한국만의 고립된 규제, 이른바 ‘갈라파고스식’ 제도 설계다. 발행 요건은 과도하게 까다롭고, 유통은 국내로 제한된다면 이는 혁신이 아니라 관리 대상의 확대일 뿐이다.
관건은 글로벌이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토큰이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만 도는 ‘내수용 상품’에 머문다면 의미가 없다. K-콘텐츠, 게임, 제조 기업의 토큰이 해외 자본과 직접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글로벌 거래, 해외 투자 유입,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인프라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 안에 가둔 실험으로는 경쟁력을 만들 수 없다. 바다로 나갈 배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번 결정이 선거를 앞둔 제스처나 단기 세수 확보용 정책이 아니라면, 이제 남은 것은 디테일이다. 통제보다 진흥, 내수보다 수출에 방점을 찍은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공은 금융당국으로 넘어갔다. 이제 또 한 번의 규제 실험으로 끝낼지, 아니면 진짜 전환점으로 만들지는 전적으로 당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