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또다시 극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연출하며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한때 불가능해 보였던 12만 달러 선을 넘나들던 비트코인은 최근 저점인 6만 2,000달러 부근까지 곤두박질쳤다.
불과 몇 달 만에 50%가 증발한 하락 폭은 변동성에 익숙한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단순한 조정을 넘어선다. 이는 비트코인이라는 초기 자산에 대한 일종의 '영적 시험'과도 같다. 무엇보다 이번 하락장은 비트코인이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직시하게 만드는, 또 다른 결정적인 ‘진실의 순간’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패턴 vs 이번엔 다르다
베테랑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현재의 패턴은 익숙하다. 열광이 고조되고 헤드라인이 숨 가쁘게 돌아가다 예고 없이 중력이 작용하며 가격이 붕괴한다. 인플루언서들은 조용해지고 대중은 "가격 상승"이 물리 법칙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늘 그래왔듯 다시 전고점을 돌파해왔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지난 10년 넘게 "변동성은 버그가 아니라 기능"이라고 설파해왔다. 고통은 정화의 과정이며 약한 손을 털어내는 필수적인 단계라는 것이다. 마이클 세일러는 변동성을 진정한 신자와 관광객을 구분하는 "사토시의 선물"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50% 하락을 견딜 수 없다면 상승을 누릴 자격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교리다.
하지만 이번 폭락을 바라보는 회의론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비트코인의 오랜 천적인 피터 쉬프는 이번 하락이 단순한 일상적 정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수년간의 이른바 '대중적 수용(mass adoption)' 이후 마침내 거품이 터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확실히 지난 2년간 비트코인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현물 ETF, 퇴직 연금, 주요 은행, 결제 플랫폼, 기업 재무, 심지어 정치 캠페인까지, 암호화폐는 미국 금융 시스템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가구를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엔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수용(Adoption)이라는 로켓 연료, 얼마나 남았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 하에 암호화폐에 전례 없이 우호적인 환경("크립토 대통령" 표방)을 조성했다. 규제 기관은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고, 월스트리트는 ETF를 통해 기관 자금의 수문을 열었다. 비트코인을 소유하기 위해 더 이상 반항적일 필요가 없어졌다.
약세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용이 로켓 연료였다면, 탱크에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가?"라는 질문이다.
미국에서 비트코인을 원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미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다음 매수세는 어디서 오는가? 수요가 정점에 달했다면 최근의 폭락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성장 스토리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시장이 조용히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하락은 구조적일 수 있으며, 금 투자자들이 정당성을 입증받고 벤처 캐피털은 AI 같은 새로운 유행을 쫓아 떠날 수 있다.
강세론자들 "여전히 글로벌 초기 단계"
그러나 강세론자들은 짐을 싸지 않았다. 톰 리(Tom Lee)는 비트코인이 글로벌 수익화의 초기 단계라는 주장을 고수한다. 래리 레파드(Larry Lepard) 같은 투자자들은 통화 가치 하락, 부채 위기,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이 결국 막대한 자본을 희소한 디지털 자산으로 이끌 것이라며 20만~25만 달러 목표가를 유지한다. 이 관점에서 이번 하락은 긴 고속도로 위의 또 다른 포트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자들조차 불편한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주류 수용의 여지가 많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규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고 금융 인프라도 구축되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비트코인이 번창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환경이 곧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우호적인 정치적 배경 속에서 50% 하락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선 진실의 순간
비트코인은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 의미 있는 회복 없는 심각한 붕괴로 이어져 틈새 자산으로 남을지, 길고 지루한 횡보장(크립토 윈터)이 이어질지, 아니면 신뢰와 유동성이 돌아와 이전 고점을 돌파하는 익숙한 기적이 일어날지.
역사는 비트코인이 비평가와 팬 모두를 번갈아 겸손하게 만드는 데 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는 낙관론자들이 굴욕을 당하고 있지만, 1년 뒤에는 회의론자들이 조롱당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이 비트코인에게 또 다른 결정적인 '진실의 순간'이라는 점이다. 맥시멀리스트들이 선물이라 부르는 변동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공포와 붉은 캔들로 포장된 이 선물을 실제로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 불분명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