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델 시큐리티즈, 피델리티, 찰스 슈왑, 버츄… 전통 금융의 내로라하는 이름들이 한데 모여 크립토 거래소를 만들었다면? 그게 바로 EDX 마켓(EDX Markets)이다.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토니 아쿠나-로터(Tony Acuña-Rohter)가 한국을 찾았다. 컨센서스 홍콩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날아온 그를 토큰포스트가 만났다.
11년간 CME에서 일한 남자, 왜 크립토로 왔나
토니의 이력은 화려하다.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인 CME 그룹에서 11년간 거래소 기술을 만들었고, 이후 CBOE 디지털(구 에어리스엑스)에서 기관급 크립토 거래소의 첫 버전을 설계했다. 그런 그가 크립토에 뛰어든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저는 사실 '크립토 신봉자'라기보다는 '시장 신봉자'예요. 당시 크립토 거래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는데, 대부분 기술자들이 거래소를 만든 거였어요. 신용 리스크, 시장 구조, 규제…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았죠. 수십 년간 쌓아온 전통 시장의 노하우를 크립토에 적용하면 어떨까, 그게 출발점이었습니다."
"크립토는 특별한 게 아니다" — EDX의 철학
EDX의 비전을 묻자, 토니는 다소 도발적인 답을 내놨다.
"크립토는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닙니다. 자산을 어떻게 거래하고 결제하고, 가격 발견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요. 우리의 비전은 단순합니다. 대형 기관들이 하루에 수억,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확장 가능한 거래소와 청산소를 만드는 것이죠."
EDX는 설립 초기부터 제품 중심 회사를 표방했다. 많은 크립토 프로젝트가 "멋진 기술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제품을 고민"하는 반면, EDX는 처음부터 대형 기관의 워크플로에 맞는 시장 구조를 설계했다. 신용 거래, 실시간 네팅, 중앙 리스크 관리 등은 나중에 덧붙일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처음부터 핵심으로 넣어야 하는 것이라는 게 토니의 지론이다.
FTX 사태와 크립토 윈터, 오히려 기회였다
EDX가 창립된 건 약 3년 반 전. 마침 FTX 사태가 터졌다. 보통이라면 위기였겠지만, EDX에게는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FTX 사태는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줬죠. 크립토 윈터 동안 약 3년간 피델리티, 로빈후드, 버츄 같은 핵심 파트너들과 함께 묵묵히 개발했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걸 증명해냈고, 이제 대형 기관들이 들어오려는 시점에서 우리는 스케일업만 하면 되는 겁니다."
기존 크립토 거래소와 뭐가 다른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요즘 많은 크립토 거래소들이 '기관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는데, EDX는 뭐가 다를까?
토니는 구조적 차이와 기술적 차이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구조. 기존 크립토 거래소들은 대부분 '수직 통합형'이다. 리테일 브로커이자 프라임 브로커이자 커스터디안이자 결제 시스템까지 다 한다. 문제는 이 역할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기존 거래소에 가입해서 주문을 넣으면, 그 주문이 어디로 가나요? 자기네 거래소로 가죠. '하우스'로 들어가는 겁니다. 반면 진정한 브로커의 역할은 고객을 위해 최선의 가격을 찾아주는 건데, 그 구조에서는 그게 안 되죠."
EDX는 리테일 브로커도, 프라임 브로커도 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 대형 브로커들이 EDX에 접속해서 유동성을 가져가는 '파이프' 역할을 한다. 로빈후드가 EDX의 대표적인 고객이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둘째, 기술. EDX의 매칭 엔진은 뉴저지 NY4 데이터센터에 코로케이션되어 있으며, 응답 시간이 마이크로초(백만분의 1초) 단위다. 재해 복구 시스템은 단일 장애점이 없는 구조이고, 지난 10월 플래시 크래시나 최근 급변동 장세에서도 시스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상 가동됐다.
"다른 거래소들이 주문을 잃어버리고 지연이 발생할 때, 우리 시스템은 평소와 똑같이 돌아가요. 그래서 마켓메이커들이 스프레드를 넓히거나 아예 빠져버리는 일 없이 계속 호가를 낼 수 있는 거죠."
미국 규제의 두 가지 물결
화제를 규제 쪽으로 돌리자 토니의 눈빛이 더 진지해졌다. 그는 미국 크립토 규제 변화를 '두 가지 물결'로 나눠 설명했다.
첫 번째 물결: 대형 은행. 미국 통화감독청(OCC)이 대형 은행들에 크립토 거래, 수탁, 이전 서비스를 은행 라이선스로 제공할 수 있다고 명확히 했다. 이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토니는 "다음 물결은 바로 대형 은행"이라고 단언했다.
두 번째 물결: 비은행 브로커. 현재 의회에서 진행 중인 시장구조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 내 3,000~4,000개 브로커가 크립토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브로커를 통해 크립토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리테일 투자자뿐 아니라 대형 자산운용사에게도 큰 변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에도 고객이 있다
EDX가 한국에도 고객이 있다는 사실은 인터뷰 중 처음 공개된 정보였다. 미국, 홍콩, 유럽, 영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EDX의 인프라를 이용하는 기관이 있다는 것이다.
토니는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미국과 한국의 주식시장 구조에 유사점이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크립토 시장 구조도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봤다.
"한국이 미국을 단순히 따라하는 게 아니에요. 기관과 투자자를 위해 올바른 구조를 만드는 건 글로벌하게 같은 원칙이니까요. 우리가 만들고 있는 패턴은 다른 자산 클래스에서 이미 작동했던 것처럼, 크립토에서도 글로벌하게 통할 겁니다."
한국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경험과 사례를 공유하러 왔다"고 했다. 미국이 겪은 규제 시행착오, 홍콩이 신용거래와 한도 설정 규정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등을 한국 관계자들과 나누는 것이 이번 방문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규제가 산업을 제약하면 결국 사람들은 우회로를 찾게 되고, 나중에 그걸 다 되돌려야 해요. 그러니 정보에 기반해 빠르게 움직이되, 산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시장 변동성에 대한 시각
인터뷰 당시 시장 변동성이 극심했던 터라, 이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시장 이벤트는 주식이든 선물이든 크립토든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에요. 중요한 건 그때 시스템이 버텨주느냐의 문제입니다. 대형 기관이 신용으로 거래할 수 있게 하면 시장 충격을 훨씬 잘 흡수할 수 있어요. 자동 청산(auto-liquidation)이 변동성을 더 키우는 거거든요. 기관급 인프라 위에서라면 그런 걱정 없이 리스크 관리에만 집중할 수 있죠."
향후 5년, 크립토는 어디로
토니는 크립토의 미래를 기술의 '추상화 계층'에 비유했다.
"블록체인을 직접 만지고, 프라이빗 키를 관리하고… 이런 게 점점 사라질 겁니다. 그 위에 레이어가 쌓이면서 사용자는 가격 발견, 리스크 관리, 비용 절감 같은 정말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게 될 거예요."
구체적인 숫자도 제시했다. 미국 상위 10개 자산운용사의 운용자산만 약 70조 달러에 달하는데, 이 중 약 50%가 크립토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추천 포트폴리오 배분 비율은 3% 수준이다. 연간 약 4회 포트폴리오 회전을 감안하면, 초기 신규 유입만 최소 120억 달러, 여기서 파생되는 일일 거래량은 240억~48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는 아직 빙산의 일각만 보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대규모 확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토니는 "시카고와 뉴욕에서 일했다"는 토큰포스트 권성민 의장과 공통 경험을 나누며 웃었다. 월가의 무게감을 크립토에 그대로 가져오겠다는 그의 자신감이 인상적이었다. EDX가 그리는 '기관급 크립토 시장'이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닿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