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열풍 속에 대형 기술주가 미국 증시를 주도해 온 가운데, 최근 투자 흐름이 보다 안정적인 업종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민감 업종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하며, 증시 내부의 온도 차가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 증시는 미중 무역갈등 재점화와 같은 대외 변수로 크게 흔들렸다. 특히 지난 10월 10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미국은 고율 관세를 경고했고, 그 여파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 지수는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후 지수는 반등했지만, 경기 흐름에 민감한 업종들의 주가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달 사이, 미국 내 지역 은행과 소매업체, 항공사, 주택 건설업체 등의 주가가 동시에 하락세를 보였다. 이들 업종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을 때 실적이 좋아지는 대표적인 경기 순환주이지만, 현재는 투자자들이 이들 종목에서 발을 빼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 부품 업체 퍼스트브랜즈와 자동차 담보 대출업체 트라이컬러가 잇따라 파산하면서, 신용 위기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지역 은행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자이언스 뱅코프, 웨스턴 얼라이언스 등의 부실 대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의 잇따른 파산 사태가 다시금 시장의 기억을 자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산을 보다 안정적인 채널로 옮기려는 수요가 늘고 있으며, 실제로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최근 4% 아래로 하락했다. 이는 국채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뜻으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증시에서는 전기, 헬스케어, 식료품 등 경기와 무관하게 비교적 꾸준히 수익을 내는 이른바 ‘디펜시브 업종’이 부각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유틸리티, 헬스케어, 필수 소비재 업종이 2022년 6월 이후 처음으로 S&P500 지수 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투자자들이 경기 침체나 불확실성을 우려하며 보다 안정적인 자산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전문가들은 대형 기술주의 강세가 오히려 실물 경제의 약세 흐름을 가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반면 일부 낙관론자들은 전체적으로 기업 실적이 양호하다는 점을 근거로 추가 하락 가능성에 제동을 건다. 그러나 시장 전반에 드리운 긴장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안전자산 및 방어적인 업종 위주의 투자 전략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갈등과 금리 불확실성, 일부 산업 내 신용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은 성장주보다 생존력을 갖춘 종목을 우선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