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메디케이드(Medicaid)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예산안이 최종 통과되면 최소 770만 명의 미국인이 건강보험을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변화는 단순한 복지 축소에 그치지 않고, 수조 원대 연방 예산 삭감과 주 정부 재정 부담 전가 등 미국 의료 제도의 근간에 거센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메디케이드 수혜 자격 요건의 강화다. 특히 19세 미만, 임산부, 산후 여성 등을 제외하고는 수혜자에게 월 80시간 이상 일하거나 학교에 다니거나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는 ‘지역사회 활동 요건’을 충족하도록 하고 있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이 요건의 시행 시점을 2029년에서 앞당겨 2027년으로 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산 삭감 규모는 7,160억 달러(약 1,030조 원)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이며, 2023년 마지막 제도 조정 이후 처음으로 메디케이드에 대한 전방위적 축소 시도라는 점에서 파장은 더욱 크다.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이 안이 시행될 경우 최소 인구의 11%가 보험을 상실할 것으로 추산된다.
뿐만 아니라 메디케이드 비용 부담을 연방정부에서 주정부로 넘어가는 구조로 개편하면서, 재정 여력이 부족한 주들은 기존 수급자의 자격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교육, 교통 등 타 분야 예산이 깎이거나 세금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및 의료보험 보호위원회의 마리아 프리스(Maria Freese) 고문은 “연방 지원을 충족하지 못하는 주는 프로그램 수급 자격을 줄이게 돼 결국 중산층 이하 대부분이 사각지대로 내몰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 피해가 메디케이드 수급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프리스 고문은 “메디케이드를 기반으로 운영되던 지역 병원이나 응급 클리닉이 줄도산할 경우, 모든 지역 주민이 의료 접근권을 잃게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 지역과 저소득 커뮤니티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예산안은 아직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하원 통과 이후 상원과의 조율, 세부 항목 수정 등의 절차가 남아 있으며,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야 정식으로 법안이 발효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예산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예산 절감 여부나 메디케이드 개편 방향 등을 두고 이견이 있으며, 협상 과정에서 일부 조항의 수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료와 직결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향후 의회 논의 과정에서도 민심과 복지 논리가 충돌하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