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자산운용이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 발표 과정이 이사회 중심 경영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가, 하루 만에 해당 서한을 철회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에서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권 보호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흥국자산운용은 최근 ‘SK하이닉스 이사회에 보내는 서한 : 일반주주의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주주서한을 SK하이닉스에 전달했다. 이 서한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남권, 즉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방식을 문제 삼았다. 흥국자산운용은 SK하이닉스 이사회 임원이 아닌 대주주 측 인사가 행정부 수반과 함께 투자 계획을 먼저 발표한 모습이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는 국제 기준, 즉 글로벌 거버넌스 원칙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핵심 쟁점은 투자 규모 자체보다 의사결정 절차에 있다. 상장회사의 대규모 투자 결정은 통상 이사회 심의와 의결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흥국자산운용은 이 같은 내부 논의가 충분히 진행됐는지 외부 주주들이 확인하기 어렵다고 봤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미등기 임원으로 이사회 구성원은 아니지만, SK하이닉스 최대주주인 SK스퀘어의 최대주주이자 SK㈜의 최대주주다. 흥국자산운용은 이런 지배 구조 아래에서 회사 밖의 주체가 막대한 현금흐름의 방향을 먼저 정하는 듯한 모습이 과거 재벌식 의사결정 관행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사회 안팎에서 어떤 논의와 숙의가 있었는지 투명하게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서한은 주주환원 정책에도 비판의 초점을 맞췄다.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현금창출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임직원 보상과 대형 투자 계획은 잇따라 발표되는데, 일반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은 뚜렷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특히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이 최근 잉여현금흐름, 즉 영업활동과 투자 뒤 남는 실질 현금을 주주에게 전액 돌려주는 정책을 내세운 사례와 비교하며, SK하이닉스는 올해 배당에서 오히려 배당성향이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배당 규모 논란이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성장 투자와 주주환원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택할 것인지와 맞닿은 문제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문제 제기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서한이 외부에 알려지며 파장이 예상되자 흥국자산운용은 서한 발송 하루 만에 이를 철회했다. 회사 측은 주식운용본부장이 8일 오후 SK하이닉스 기업설명(IR)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서한을 보낸 사실은 확인됐지만, 이는 회사 공식 입장이 아니라 주식운용본부장 개인 의견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서한 내용이 회사 입장과 다를 뿐 아니라 일부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어 철회했다고 밝혔다. 흥국자산운용은 자사가 운용하는 일부 펀드가 SK하이닉스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은 한 운용사의 철회로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대규모 투자 발표의 절차적 정당성, 이사회의 실질적 역할, 그리고 주주환원 확대 요구는 앞으로도 국내 대기업과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계속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