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사기단지와 연결된 디지털자산 투자사기 의심 금융활동이 127억 달러(약 17조2339억원)로 집계됐다. 미국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업체와 은행을 거친 자금 흐름을 함께 점검하며 금융회사에 의심거래 보고 강화를 요구했다.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핀센)는 한국시간 4일 공개한 금융동향분석에서 2023년 9월 8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접수된 은행비밀법(BSA) 보고 3만3904건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보고 대상 피해자는 미국 50개 주와 일부 미국령 전역에 걸쳐 있었다.
보고 건수는 가상자산 업권과 은행권에 집중됐다. 송금·환전 등 자금서비스업자는 1만8568건으로 전체의 54.8%를 차지했고, 관련 금액은 55억 달러(약 7조4635억원)를 넘었다.
예금취급기관은 1만3810건, 40.7%를 보고했으며 금액은 약 64억 달러(약 8조6848억원)였다. 증권·선물사는 1504건을 보고했고, 관련 금액은 7억8450만 달러(약 1조646억원)였다.
핀센이 지목한 사기 방식은 이른바 '돼지도살'로 불렸던 관계형 투자사기다. 사기범은 문자, 소셜미디어, 데이팅 앱 등으로 접근해 연인이나 친구, 사업 파트너처럼 신뢰를 쌓은 뒤 피해자에게 디지털자산 투자를 권유했다.
가짜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으로 수익이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도 쓰였다. 피해자가 자금을 인출하려 하면 세금이나 수수료 명목의 추가 송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자금세탁 구조도 함께 제시됐다. 핀센은 경보문에서 사기 조직이 전문 자금세탁업자를 동원해 차명계좌, 유령회사, 머니뮬 네트워크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경로에서는 디파이(DeFi) 프로토콜과 해외 거래소가 함께 거론됐다. 사기 수익은 여러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을 거친 뒤 스테이블코인으로 교환되는 사례가 많았고, 테더(USDT)가 자주 언급됐다.
사기단지는 주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에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핀센은 국제기구와 법집행기관 자료를 근거로 수십만 명 규모의 인신매매 피해자가 사기단지에 갇혀 온라인 사기에 동원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허위 채용 공고에 속아 현지로 이동한 뒤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강제노동을 당한 사례가 보고됐다. 디지털자산 투자사기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이 결합된 초국가 범죄라는 설명이다.
진 랭(Gene Lange)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 직무대행은 "디지털자산 투자사기는 오늘날 미국인이 직면한 가장 중대한 사기 위협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초국가 범죄조직이 신기술과 인간의 취약성을 함께 악용해 피해를 키운다고 설명했다.
이번 자료는 확정 피해액 통계가 아니라 금융회사가 보고한 의심 금융활동 규모다. 완료된 거래와 시도된 거래, 계좌 간 이전, 중복 보고가 포함될 수 있어 범죄 수익이나 피해액으로 그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만 의심 활동이 은행 계좌, 가상자산 거래소, 해외 플랫폼을 넘나든다는 점은 금융회사 감시 체계에 부담을 키운다. 은행은 초기 송금 흐름을, 가상자산 업체는 지갑 이동과 스테이블코인 전환 경로를 포착해야 하는 구조다.
앞서 본지도 핀센이 해외 스캠센터와 연결된 디지털자산 투자사기 의심 금융활동 127억 달러를 분석했다고 전했다. 이번 경보는 같은 사안에서 금융기관의 보고 방식과 자금세탁 위험 신호를 구체화한 조치다.
핀센은 금융회사에 새 의심활동 보고 키워드 'FIN-2026-SCAMCENTERS'를 쓰도록 요청했다. 또 단일 징후만으로 불법성을 단정하지 말고 고객의 과거 거래, 자금 이동 목적, 반복된 위험 신호를 함께 보라고 제시했다.
핀센의 신속대응프로그램은 2015년 이후 18억 달러(약 2조4426억원)를 차단했다. 같은 기간 미국 피해자 5790명에게 10억 달러(약 1조3570억원) 넘는 도난 자금을 회수해 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