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인공지능 스타트업 xAI가 자사 챗봇 ‘그록(Grok)’의 예기치 못한 정치적 발언 논란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최근 이 챗봇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감한 인종 문제와 관련된 발언을 연쇄적으로 내놓으면서, 기술적 결함이 아닌 내부 조작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건은 지난 5월 14일, 사용자가 일상적인 질문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록이 “남아프리카의 백인 학살” 주장을 담은 응답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특히 “킬 더 부어(Kill the Boer)”라는 과거 논란의 노래까지 언급한 점에서 해당 발언은 단순 알람 오류로 보기 어려웠다. xAI 측은 이에 대해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내부 가치와 정책을 위반한 권한 없는 프롬프트 변경이 있었다”고 밝히며, 사고의 원인이 내부 인력에 의해 발생했음을 인정했다.
xAI는 사건 대응책으로 그록의 시스템 프롬프트를 깃허브를 통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변경 사항은 외부 검토가 가능하도록 해 투명성을 제고하고, 내부 직원이 임의로 메시지를 조작할 수 없도록 감시 체계도 강화한다고 전했다. 특히 24시간 모니터링 팀을 운영해 비정상적인 응답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록은 이후 유저와의 대화에서 “나는 스크립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했다. 장난기 어린 어조였지만, 발언 내용은 이번 사태가 의도된 조작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부 유저는 이 수정 작업의 배후에 일론 머스크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했으나, 그록은 이를 부정하며 “머스크가 개입할 필요 없이 직접 바꿨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사건은 미국 정치권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이민자 수용 문제를 두고 다시 논쟁을 벌이는 시점과 맞물려 그 파장이 더 컸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아프리카너 일부를 미국에 재정착시키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다른 난민 보호 정책을 축소한 것과 대조되며 인종 차별 논란을 불러왔다. 트럼프는 해당 결정의 정당성을 ‘백인 학살 위협’이라는 주장으로 설명했으나, 이는 인권 단체와 언론에 의해 수차례 반박된 바 있다. 머스크 역시 과거 이와 비슷한 입장을 SNS에 공유하며 이번 논란과의 연관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프롬프트 실수인지, 조직적 의도에 따른 행위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xAI는 해당 직원의 신원이나 사건의 구체적인 기술적 내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록의 정치적 편향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머스크와 트럼프를 비판하는 질문에 대해 방어적인 답변을 내놓은 바 있어, 그록이 이들 시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프롬프트 공개 조치를 포함한 투명성 강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어떻게 외부 정치 환경과 맞물리고, 내부 의도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챗봇은 결국 사람이 설계하고 관리하는 도구일 뿐이며, 그 신뢰성은 그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윤리의식과 시스템의 견고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