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에 걸쳐 변화를 이끄는 가운데, 그 영향이 국가, 교육, 기업 등 주요 *제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AI가 사람처럼 사고하고 판단하며 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오랜 시간 안정과 신뢰의 기반으로 기능해 온 제도적 체계는 존재의 이유 자체를 다시 물어야 할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구성원의 자율성과 규범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는 지금까지 변화보다는 연속성을 중시해 왔다. 하지만 AI 기술은 이 같은 기본 전제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교육기관, 입법기관, 법원, 기업 등은 AI가 만들어내는 정보 처리 능력과 자동화된 분석력 앞에서 기존의 *전문성*, 위계, 판단 구조에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AI의 등장은 그 자체로 도전이자 *촉진제*로 작용한다. AI가 현실의 빠른 변화를 가속화하면서, 기존 제도는 그 구조와 운영 방식, 역할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AI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판단과 조정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제도는 단순히 자동화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 구조와 인간 역할의 재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각 제도는 저마다 방향을 모색 중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차터 스쿨은 AI 기술을 수업에 본격적으로 도입하며 교사의 역할을 지식 전달자에서 조력자와 멘토로 재정의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세계은행과 협력한 시범 프로그램을 통해 AI 튜터가 보조 교사 역할을 수행하며 6주 만에 2년치 진도를 달성하는 학습 효과를 입증했다.
정부차원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외무국에서는 AI를 이용해 민원 분류 작업을 자동화했고, 미국 일부 지방 정부는 ChatGPT 등 생성형 AI를 통해 공무원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오픈AI 또한 정부 전용 모델을 개발해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기술 적용이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또 인간 고유의 역할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는 여전히 미진하다. 생성형 AI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는 앤트로픽(Anthropic)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의 경고가 있다. 그는 향후 1~5년 사이에 AI로 인해 전체 화이트칼라 초급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지고 실업률이 최고 20%까지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은 이미 다보스포럼 등의 글로벌 무대에서 거론되어 왔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Kevin Roose)가 2019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다수 기업은 공개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가능한 한 빠르게 직원 대신 기계를 투입하고 싶어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근 그의 후속 보도에 따르면, AI 스타트업들은 “가상 직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는 대규모 정규직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단초적인 변화의 징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 같은 실험적 시도가 당장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에 그친 채 구조적 재설계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사회 전체 제도가 공백과 혼란이라는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AI 도입 여부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인간 중심의 제도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설계 철학이 중요하다. 첫째, 지속 가능성보다 *민첩성*을 우선시하는 제도 구조의 전환이다. 빠르고 복합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느슨하고 탈중앙화된 의사결정 구조가 요구된다.
둘째, AI는 반복 작업과 행정 부담을 덜어주는 도구로서 인간이 보다 높은 차원의 창의, 판단, 관계 구축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인간의 판단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윤리적 함의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의사결정에는 인간의 손길이 반드시 개입되어야 하며, 이는 시스템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결국 AI 시대를 살아갈 제도는 지금보다 더욱 인간다워져야 한다. 기술의 속도와 복잡성에 발맞춤과 동시에 인간 존엄과 도덕적 판단이라는 가치 기준은 놓쳐선 안 된다. 전통적 제도의 권위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주어지지 않는 시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 제도는 왜 존재하는가.
AI가 인간 사고의 지형을 재편하면서 제도 전반은 새로운 정체성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AI는 인간과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가 되어야 하며, 제도는 이러한 관계 설정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재정의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단순한 대응이 아닌 의도에 기반한 설계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기술의 파도에 휩쓸리기보다 '무엇이 인간적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