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 개정안 시행이 가까워지면서 국내 인공지능 산업이 본격적인 제도 적용의 첫 시험대에 올랐다. 생성형 인공지능 표시 의무와 고영향 인공지능 규정이 현실에 적용되기 시작하는 만큼, 산업계는 신뢰를 높일 제도라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준이 지나치게 넓거나 모호하면 서비스 개발과 시장 진입이 위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9일 인공지능·정보통신기술 업계에 따르면 현장에서 가장 민감하게 보는 쟁점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어느 수준까지 활용했을 때 표시 의무가 생기느냐다. 콘텐츠를 전부 인공지능으로 만든 경우는 비교적 판단이 쉽지만, 문장 교정이나 이미지 보정처럼 일부 공정에만 인공지능을 쓴 경우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이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을 다시 손질하거나 검수한 경우에도 어디까지를 인공지능 생성물로 볼 것인지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활용 비중이 99퍼센트인 경우와 1퍼센트인 경우를 똑같이 취급하는 방식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영향 인공지능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도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고영향 인공지능은 의료, 채용, 금융, 교육처럼 국민의 권리와 안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 쓰이는 인공지능을 뜻하는데,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어떤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기업과 정부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기업은 서비스 출시에 앞서 법률 검토, 위험 평가, 내부 심의 같은 절차에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한다. 대기업은 대응 여력이 비교적 크지만,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에는 이런 비용이 사실상 새로운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한 국내 인공지능 스타트업 관계자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에서 핵심 규정이 모호하면 시행 초반부터 위법 논란에 휘말릴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도 같은 기술을 두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포괄적인 연방 인공지능 기본법보다는 행정명령과 분야별 제도를 중심으로 운용하면서 기술 혁신과 기업 경쟁력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규제 장벽을 낮추고 인공지능 인프라와 수출을 확대하는 방향을 정책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알고리즘, 인공지능 생성물 표시처럼 개별 영역별 규정을 세분화해 운용 중이다. 유럽연합은 위험 수준에 따라 금지 대상, 고위험, 투명성 의무 대상 등으로 나누는 인공지능법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채용·교육·의료기기 등 일부 고위험 분야에는 위험 관리와 기록 보존, 사람의 감독 같은 강한 의무를 부과한다. 반면 일본은 지난해 제정한 인공지능법에서 직접 규제보다는 연구개발 촉진, 산업 활용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등 진흥책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추격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제도 설계에서도 산업 경쟁력과 규제의 균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 학장은 세계에서 먼저 법을 시행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을 제조, 국방, 콘텐츠, 서비스 같은 산업 전반에 널리 활용해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정부는 최소 1년 이상의 계도기간을 두고 고영향 인공지능 적용 사례와 생성형 인공지능 표시 방식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결국 이번 제도의 성패는 위험 관리는 분명히 하되, 기업의 실험과 사업화를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는 정교한 운용에 달려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시행령과 세부 지침이 얼마나 유연하고 구체적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국내 인공지능 산업의 성장 속도와 시장 진입 환경을 크게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