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화(Tokenization)는 2017년 ICO(초기 코인 공개) 열풍과 함께 전통 금융을 블록체인 기술로 현대화하겠다는 암호화폐 업계의 대표적인 비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는 주로 기존 주식을 온체인에 올려 실시간 거래와 소액 소유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머물러왔다. 주식 시장은 이미 높은 효율성을 지닌 구조인 만큼, 이러한 방식은 혁신이라기보다 보완에 가깝다.
실질적인 변화는 오히려 비효율성이 여전히 만연한 사모 시장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사모 주식 시장은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고 수수료가 높으며, 전체 투자자의 80% 이상은 규제 때문에 아예 진입조차 못 한다. 이러한 제한된 구조는 자본 형성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반면, 사모 지분을 토큰화하면 자본 형성 자체의 접근 방식을 재구성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화 수준이 아니라 금융 포용성을 근본적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상장 이전의 고성장 기업 투자는 현재 소수의 벤처 자본과 기관만이 가능한 영역이다. 아마존이 상장된 당시 기업 가치는 4억 3,800만 달러(약 6,083억 원)였지만, 요즘 유니콘 기업은 500억 달러(약 69조 5,000억 원) 이상으로 커진 후에도 비상장 상태를 유지한다. 스트라이프, 오픈AI,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일반 투자자가 개입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개인 투자자도 성장 초기부터 참여할 수 있었지만, 자본 시장이 점차 상류에서만 작동하게 되면서 ‘기회 불균형’이 심화됐다.
게다가 이러한 추세는 미국 실리콘밸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미, 아시아, 중동 지역 기업들 또한 이제는 IPO가 아닌 사모 자금을 선호하며, 주권기금이나 패밀리 오피스를 통해 자금을 모은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역동적인 성장 기회에서 배제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토큰화는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열쇠다. 사모 지분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기업은 보다 다양한 글로벌 투자자에게 직접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소유권을 디지털로 표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전송할 수 있게 하므로 중개 수수료를 줄이고 자금조달 비용과 복잡성을 크게 낮춘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의 유동성 구조는 스타트업 초기 구성원이나 초기 투자자가 전체 지분 매각 없이 일부를 유동화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준다.
전통적인 규제는 일반 투자자가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를 방지한다고 하지만, 이미 20대의 투자자도 레버리지된 밈 주식이나 암호화폐 파생상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현실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핵심은 리스크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시스템의 결함이다. 현재의 인증 투자자 기준은 1930년대에 설계된 법으로, 순자산이 100만 달러(약 13억 9,000만 원)가 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가진 이들에게만 사모 투자 기회를 부여한다. 이는 자본이 축적된 사람만 더 많은 기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구시대적 기준이다.
앞으로 2025년까지 전 세계 비상장 시장의 자산은 15조 달러(약 2,085조 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지만, 이 기회에서도 일반 투자자는 배제돼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토큰화는 매우 큰 ‘시장 해방’의 가능성을 품는다. 기업이 매출 3억 달러(약 4,170억 원)에 이르기 전이라도 지분을 토큰화할 수 있다면, 수십만 명의 개인 투자자도 초기 단계에서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위험 요소는 무시해선 안된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기존 제도보다 더 높은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한 탈규제가 아닌,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보호 장치를 갖춘 채 사모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충분히 현실적인 접근이다. 이것이야말로 소수만의 혜택이었던 자본 형성 구조를 진정한 참여 기반으로 재편하는 혁신이다.
더 나아가, 사모 지분 토큰화는 전 세계적으로 자본 접근 자체의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기존 IPO 인프라가 약한 신흥국 시장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자금 조달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크다. 이는 단순히 거래를 빠르게 만드는 기술 혁신이 아니라, 누가 경제를 설계할 수 있는지의 주도권을 재편하는 도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시스템에 속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궤도 위의 금융 인프라다. 사모 지분 토큰화는 그 틀을 세울 수 있으며, 다음 세대가 경제의 주체가 될지, 혹은 또다시 관중으로 남을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