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화된 세계에서 증권예탁기관(CSD)과 중앙청산소(CCP)는 사라질 것인가.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워킹페이퍼 「토큰화 경제의 금융시장인프라 진화」은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다. 스마트컨트랙트와 분산원장이 오늘날 CSD·증권결제시스템(SSS)·CCP·거래정보저장소(TR)가 수행하는 상당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지만, 코드 그 자체는 법적 확실성을 제공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위기 상황에서 재량을 행사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핵심 명제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토큰화는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가 아니라 제도의 재설계(institutional redesign)를 의미한다.” 가장 개연성 높은 결과는 스마트컨트랙트가 운영·거래 기능의 더 큰 몫을 담당하고, 법적 실체는 거버넌스·컴플라이언스·리스크관리·개입을 책임지는 하이브리드 FMI라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코드로 옮길 수 있는 것
보고서는 결정론적(deterministic)이고 규칙 기반(rules-based)이며 데이터 중심인 기능일수록 온체인 자동화가 쉽다고 본다. 기록 관리, 결제(settlement), 담보 이전, 보고가 여기에 해당한다. 자산·현금·담보가 하나의 프로그래머블 환경에 존재하면 라이프사이클 단계가 압축되고 서로 긴밀하게 조율돼, 담보의 효율적 활용과 대사(reconciliation) 부담 축소, 금융 기능 간 컴포저빌리티 확대의 여지가 열린다.
코드로 옮길 수 없는 것
반면 법적 확실성, 책임 있는 거버넌스, 감독당국의 접근, 위기 시 재량에 의존하는 기능은 본질적으로 제도적으로 남는다. 저자들은 리스크모델 거버넌스, 마진 산정(calibration), 디폴트 관리, 손실 분담(loss mutualization), 업무 연속성, 그리고 오라클 입력값이나 실물자산에 대한 법적 청구권 같은 오프체인 의존성을 대표적 사례로 든다. 스마트컨트랙트가 기술적으로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더라도, 책임을 귀속시키고 판단을 내리며 개입이 필요한 지점에서는 법적 실체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보고서는 마진콜 자동 집행을 예로 든다. 마진이 제때 납입되지 않았을 때 자동으로 디폴트를 선언하고 손실 흡수·분담 절차를 발동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시장 스트레스 국면에서는 부적절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예 시간(grace period)을 부여하는 수작업의 유연성이 오히려 시장 안정을 지키는 회복력 장치가 된다는 것이다. 자동화와 재량 사이의 이 긴장이 하이브리드 모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FMI가 계속 필요한가”가 아니라 “FMI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가 정책 과제라고 못박는다. 핵심 경계선은 코드로 신뢰성 있게 실행될 수 있는 것과, 책임 있는 제도에 닻을 내려야 하는 것 사이에 있다. FMI의 미래는 완전한 탈중개가 아니라 제도의 재설계라는 것이다.
한국 시장에 대입하면 함의는 분명하다. 토큰증권(STO) 제도화와 함께 예탁결제·청산 인프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컨트랙트가 담당하는 결제·기록 위에 책임 주체로서의 역할이 재정의되는 국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개기관 소멸’ 서사보다 ‘기능 재배치’ 서사가 현실에 가깝다는 것이 이 보고서가 국내 논의에 던지는 시사점이다.
편집자 주
- IMF 워킹페이퍼는 진행 중인 연구로,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IMF·집행이사회·경영진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 공저자 Tommaso Mancini-Griffoli는 집필 시점 IMF 소속이었으며 현재는 국제결제은행(BIS) 소속으로 표기됐다. Fabian Schär는 바젤대 교수다.
- ‘토큰증권 제도화’ 관련 국내 입법·시행 일정은 변동 가능성이 있어 원문 확인이 필요하다. 한국 시사점 단락은 보고서 내용이 아닌 토큰포스트의 해석이다.


